[책]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_배수아
2011년에 재판이 나왔구나.... 배수아 책 읽어보고 싶었는데 마침 알라딘 중고서점에 들렀다 있길래 집어옴. 근데 이렇게 트렌디하고 가벼운 느낌이었나(나쁜 뜻은 아니다)? 좀더 요즘 나왔던 책은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탈연애주의 및 탈결혼주의에 대하여 은희경의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라는 책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은희경 작이 좀더 깊고 심각하고 고독하다면, 배수아 작의 여주는 그냥 짜증나 있다(...). 전개는 절대 비슷하지 않은데 소재가 비슷하다 보니 은희경 작이 떠올랐나 싶다. 가볍게 읽기 좋은 책. 그런데 저 표지는 대체.....
은희경이 결혼주의 자체보다는 인간 내면의 고독, 불신에 집중했다면 배수아는 어떻게 연애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의외로 섹스 얘기는 노골적으로 안함. 작가가 얘기하고 싶었던 건 단순한 관계의 방식보다 좀더 넓은 '라이프스타일'이라는 개념이었을지도.
그나저나 은희경과 배수아의 작품 속 여주뿐 아니라 많고 많은 작품들이 그렇듯 90년대부터 좀 배웠다 하는 여자들은 (특히 한국의)결혼제도에 대하여 상당히 회의적이었나 보다. 이렇게나 결혼제도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작품이 많은데도 세상이 좁쌀만큼도 변하지 않고 있다니 놀랍다.
슬슬 결혼에 대해 생각할 나이가 되어가고 있어서 그런가, 이런 책들이 와닿는다. 나는 그저 '가볍게 살고 싶다. 아무렇게라는 것은 아니다.'
-책갈피
* 그래, 분명 보랏빛 인생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열렬하게 yes, yes!
* 어차피 나는 결혼하지 않을 것이고 결혼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일은 나와는 상관없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의 일이 이 지구를 오염시키고 고릴라 발바닥 장식물과 같은 혐오스러운 취미를 장려하는 일만 아니라면 내가 흥분할 일이 조금도 없다.
* 조직이란 잘 체계화된 폭력이다. 결혼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서 결혼을 하지 않으면 섹스를 할 수 없고 아이를 낳을 수 없고 가족수당을 타지 못하며 주변에 돌봐줄 사람이 하나도 없을 말년을 걱정해야 하는 것은 채 느끼지 못하는 극심한 폭력이다.
* 사람들은 남자/여자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먹이와 자신의 정체성을 위해서 일한다. 먹이도 정체성도 부족할 때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결혼이다.
* 어차피 인생이 초이스라고 말한다면 이것이냐 저것이냐 그것이 문제 아닌가. 난 가정경영 따위에는 관심이 없고 요리나 육아도 하고 싶지 않다. 내가 게을러서가 아니다. 난 다른 것이 더 좋다. 땀을 흘린다면 다른 것을 위해서 흘리고 노동한다면 다른 것을 위해서 하고 싶다. 난, 다른 것에 걸겠다.
* 기억 아득한 젊은 날 나는 그를 사모했다. 지금껏 내가 경험한 또 다른 가장 고독한 것이었다.
* 우화 속의 인물은 역할에 불과하다. 그것은 진술의 틀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오랜 시간 동안 정형화된 역사에 익숙해져서 다른 형태의 진술을 해석하지 못한다. 아니 다른 형태의 진술 자체가 불가능하다. 나 역시 교진과 나에 대해서 지금 말하게 되었을 때 그 우화의 정형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말이란 도처에 함정이 있게 되는 것이다. 자신에게 소중한 것이 있다면 그것을 지키는 길은 단지 침묵뿐이다.
헤어짐이 아프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건 오만이다.
* 이 모든 것이 왜 이렇게 상투적일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다 그런 것일까. 쓸쓸하기조차 하다.
* 대개 미덕이라고 생각되는 것들, 더 마음이 끌린다거나 나를 더 생각해 준다거나 도덕적으로 장애가 없다거나 순수하다거나 심지어는 사랑한다거나 하는 것은 모두 다 핑계일 뿐이다. 결국 인간은 자기 자신 말고는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