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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리뷰_문화생활/책과 영화 그리고

[책]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_신경숙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저자
신경숙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0-05-19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살아 있으라, 마지막 한 모금의 숨이 남아 있는 그 순간까지 ...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신경숙 작가는 '엄마를 부탁해'로 잘 알려져 있다. 나도 몇 년 전에 읽으면서 눈물 콧물 다 뺐던 기억이...

요새는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의 인용글들이 심심찮게 보이길래, 역시 리디북스에서 이북으로 구매해서 읽어 봤음.

신경숙 작가의 문체는 굉장히 서정적이고 감성적이다. 최루성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보통 최루성이라고 하면 알맹이는 뭣도 없으면서 감성팔이하는 걸 부정적으로 표현하는 거라 그렇게 말하긴 어렵다. 감성적이면서, 단단한 느낌. 은희경 소설이 얼마나 시크한지 대비효과를 일으킬 정도 ㅋㅋ

 

미루, 윤, 명서, 단의 청춘과 성장스토리. 읽으면서 계속 '이거 뭔가랑 비슷한데' 싶었는데,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닮았다.

격변하는 시대상과 상실, 그 속에서 혼란을 느끼는 젊은이들의 이야기. 작가도 뒷편 후기에서 우리나라판 성장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남기고 있음.

 

-책갈피(스포주의)

 

* 의문과 슬픔을 품은 채 나를 무작정 걷게 하던 그 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 쓰라린 마음들은. 혼자 있을 때면 창을 든 사냥꾼처럼 내 마음을 들쑤셔대던 아픔들은 어디로 스며들고 버려졌기에 나는 이렇게 견딜만해졌을까. 이것이 인생인가. 시간이 쉬지 않고 흐른다는 게 안타까우면서도 다행스러운 것은 이 때문인가. 소용돌이치는 물살에 휘말려 헤어나올 길 없는 것 같았을 때 지금은 잊은 그 누군가 해줬던 말. 지금이 지나면 또다른 시간이 온다고 했던 그 말은 이렇게 증명되기도 하나 보다. 이 순간이 지나간다는 것은 가장 큰 고난의 시절을 보내고 있는 이에게나 지금 충만한 시절을 보내고 있는 이에게나 모두 적절한 말이다. 어떤 이에게는 견딜 힘을 주고, 어떤 이에게는 겸손할 힘을 줄 테니까.

 

* 무릎을 꿇고 싶은 마음이 들 때면 이 도시를 걸어다니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 우울과 고독 속에서 자주 생각했던 것도 같다. 그와 함께였으면 좋겠다고.

 

* -이런 날이 올까?

꽃사과를 따며 누군가 툭 던진 말이 우리들 가슴속으로 스며들었다.

-똑같은 날은 없어.

 

* 요절이란 말도 서른셋이 되기 전 죽은 자들에게나 주어지는 것 아니겠나. 예술가들에겐 요절은 때로 영광이지.

 

* 너를 만나지 않았으면 나는 아마 작년의 오늘과 지금의 오늘을 구별하지 못했을 거야.

 

* 누군가에게 마음을 털어놓는 일은 가까워지는 게 아니라 가난해지는 일일 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그때 했던 것도 같다.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일은 오히려 침묵 속의 공감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 나부터 독립적이고 당당하길 바란다. 숨김이 없고 비밀이 없으며 비난하지 않는 인간관계를 원한다.

 

* 나도 혼자인 게 좋아. 내가 너를 아프게 할까봐 네 곁에 가까이 가지 않으려고도 했었어. 혹시 말이야, 나 때문에 마음 아픈 일이 생겨도 나를 미워하진 말아줘.

 

* 작별이란 그렇게 손을 내밀지 못한 존재에게 손을 내밀게 하는 것인지도. 충분히 마음을 나누지 못한 존재에게 더 신경이 쓰이는 것인지도.

 

* 너는 내게 남아있는 단 하나의 출구야.

 

* 불행히도 지상의 인간은 가볍게 이 세상의 중력으로부터 해방되어 비상하듯 살 수는 없습니다. 산다는 것은 무의 허공을 지나는 것이 아니라 무게와 부피와 질감을 지닌 실존하는 것들의 관계망을 지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살아 있는 것들이 끝없이 변하는 한 우리의 희망도 사그라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살아 있으라. 마지막 한 모금의 숨이 남아 있는 그 순간까지 이 세계 속에서 사랑하고 투쟁하고 분노하고 슬퍼하며 살아 있으라.

 

* 가치의 기준을 정하고 싶다. 이 현상과 저 현상 사이에서 헤매는 것을 멈추고 싶다.

 

* 하지만 돌도 더위도 추위도

또한 당신도 막을 수는 없지

내 맘대로 내 속에서

마치 계절이 오가며

땅 위에 숲을 만들듯

내가 당신을 부쉈다 다시 맞추는 것을.(쥘 쉬페르비엘)

 

* 그가 공허한 목소리로 어서 세월이 많이 흘러갔으면 좋겠다, 정윤, 하고 말했다. 용서할 수는 없어도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고. 아주 힘센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고.

 

*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절망할 줄 모르면 무슨 의미가 있겠나. 다만... 그 절망에 자네들 영혼이 훼손되지 않기만을 바라네.

 

* 젊은이들이 오로지 사랑스럽게만 보일 때 나이를 먹었다는 것을 실감한다. 나이를 먹는 게 나쁘지 않다. 청춘을 통과해내고 있는 젊은이들을 향한 은근한 부러움, 눈을 비비고 있어도 빛이 나는 그들을 향해 물결처럼 퍼지던 상실감이 가라앉고 오로지 그들이 무엇에도 압박받지 않고 자유롭게 앞으로 한 발짝씩 나아가기만을 바라게 되는 것도 나이를 먹는 일에 속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