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글귀를 찾기 위해 두 번 읽었다.
많이 쓸쓸하고 많이 감상적이다.
초안은 아마 더 감상적이었는데 고치고 덜어내느라 고민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연애는 거기서 느껴지는 감정이 슬픔이건 기쁨이건 불같아야 지당하다.
진정한 의미의 '이별 여행'따위는 도저히 불가능하다.
나는 벌써 직장도 내팽개치고 세계일주를 떠났을 것이다.
내 안의 어떤 한 '사람'-인연, 추억, 감정-이란 번아웃, 보다 페이드아웃되는 존재더라.
책을 낸다는 것 자체가 그를 신경쓰고 있다는 사실의 반증이다.
글쓴이는 지금쯤 크리스틴을 얼마나 잊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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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와 사귄다는 것은 그 사람만을 사랑하겠다는 약속이니, 그를 제외한 모든 사람을 사랑의 대상으로는 포기한다는 뜻이다.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라는 말의 의미는
'지금부터 미래의 모든 유혹에 굴복하지 않겠다' 라는 다짐의 고백이기도 하다.
모든 선택에는 반드시 포기가 뒤따르고, 따라서 선택은 포기를 택한다는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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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꿀 수 없는 과거에 발목을 잡히고 미래는 가정법으로만 말해야 하는 것이 이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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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했다.
행복은 일상이 평소의 무게를 잃고 공기처럼 가벼워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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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은 왜 연인뿐만 아니라 자존감마저 앗아가는 걸까. 사랑받는 일만큼 세상을 당당하게 바라보게 하는 힘은 또 없는 걸까. 궁금한 것은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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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에 만족한 적은 있어도 행복한 적은 없었다. 만족과 행복은 다르지 않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것은 완전히 달랐다.(...)
행복은 충만한 기쁨이나 완벽한 만족이 아니었다.
행복은 불안의 최대화였다.
그 아이의 몸 안에서, 그 아이의 몸을 안고서 나는 다시는 이런 격정의 따뜻함을 느끼지 못할까 불안했다. 이대로 온 세상이 정지할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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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무자비하게 정직할 용기가 있다면, 문제의 답은 쉽게 찾아지는 법이다.
[실은 너를 만나는 일이 재난인 줄 알고 만난다.
그리고 그 재난이 어떤 종류의 반복이라는 사실도 훤히 안다.
정작 내가 모르는 것은 그 재난을 회피할 정도로 내가 내게 행복을 허락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김영민, [동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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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틴을 향한 내 사랑을 모아서 태우면 어떤 냄새가 날까. 분명 지독할 것이다. 말라 굳은 마음이 아니라, 여전히 살아 있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것들은 불에 잘 타지 않아 주변을 악취로 오염시키며 살아 있음을 증명한다.
그러니 모든 고통은 현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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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괄호 밖에 찍힌 마침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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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는 울먹이며 계속 곁에 있어 달라고 말했다. (....)
그 말에 나는 오랫동안 묶이겠구나, 직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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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으니 불안하지, 라고 말하면서도 그 말이 담고 있는 차가움을 몰랐었다.
나는 그 아이의 불안을 내 몫인 양 끌어안겠다고, 그것이 어른의 사랑이라 말하며 한껏 위선을 떨었다.
내 몫의 불안도 감당하지 못하여 쩔쩔매면서 사내의 허세를 떨던 시간들, 내가 아는 사랑은 고작 그런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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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때를 놓친 '만약'이라는 모든 가정 앞에서 나는 초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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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의 과거는 나를 외롭게 만든다. 나는 도저히 그 사람이 살아버린 시간들에 가 닿을 수 없는 탓이다.
(...)
이런 상상은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나를 찌른다.
못이 가득 박힌 길 위를 걸어가야만 했던 예수의 고통이 전이된다.
모든 연인은 사랑의 순교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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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오늘 몫만큼만 슬퍼한다.
내일의 것을 앞당겨 슬퍼한다고 슬픔의 총량이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슬픈 오늘을 살다 보면 언젠가 어제의 슬픔만이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