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블로그를 쉬엄쉬엄 하는 이유는
연극을 안 봐서도 아니고
박배우를 안 봐서도 아니고
오히려 너무 많이 보기 때문에 후기 쓰는 속도가 관극하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서임(...)
예전에는 일주일에 많아야 두 번 보고 주말에 정리해서 쓰고 그랬는데
이제는 그 두 배랄까 하하
내가 전공자도 아니고 그냥 취미일 뿐인데 관극하는 날 수가 일하는 날 수를 무서운 속도로 따라잡고 있어서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 늘 반성하고 있다
반성만 하고 있다...
무튼 그러한 사정으로 이거 괜찮겠다 싶은 연극이 있더라도
이미 한두달 전에 1개월치 스케줄이 픽스되는 게 보통이라
새로운 걸 하나 끼워넣자면 나머지 일정들이 우르르 무너져 버리는데다
여기서 더 끼워넣자니 도저히 체력적 경제적으로도 힘들어서 무리....
뭐 그래서 해피투게더도 아마 안되겠네 싶어서 포기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감사하게도 초대권 나눔을 받아서 보고 옴.
난 부끄럽지만 형제복지원 사건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근현대사야 고등학교 때 내신 성적 때문에 최소한으로 공부했던 게 전부이고
그나마 내 기억으로는 형제복지원을 다룬 교과서나 교재는 없었다.
있었어도 아마 시험에 나오지 않으니 패스했을 것이고.
이후 대학생 시절이나 취직을 한 지금까지 딱히 신문을 가까이 한 적은 없었어서
막연히 '군정부 시절 억울하게 죽은 사람이 많았다더라' 정도로만 희미하게 알고 있을 뿐이고
그러한 사회 문제가 TV프로그램에 나와야 겨우 볼까말까 하는 정도이다.
주변에 이 연극 봤다는 사람이 많지 않고, 연극 내용을 설명해도 잘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던 걸 보면
아마 나 같은 사람이 적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런 사실에 안도하고 싶지 않다.
두 시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구체적인 소품과 배경 없이 무대 위에서 연극으로 재연된 내용으로만 보아도
이 사건은 나처럼 무지한 사람이 많다며 안도하기에는 너무 가슴아프고 처참하다.
연극의 초중반까지 나는 이 연극에서 공리주의, 즉 최대다수의 행복을 최대의 가치관으로 삼는 것 그리고 기독교 신앙 이 두 가지의 '부작용'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중후반으로 가면서 이건 '부작용'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작용이라 함은 어떤 '좋은' 목표, 예를 들자면 부랑자들을 계도해서 시민들의 안전에 일조한다거나 신의 뜻에 따라 그들을 전도한다거나
그런 공공선/이타적인 목표를 추진할 때 어떤 지점을 간과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일 것이다.
연극 중 박인근 목사 역이 말하듯 '설거지 하다가 그릇 몇 장 깨는 것'이 그러하듯 말이다.
하지만 형제복지원 사건에 있어서는 그들을 감금한 데에 있어 그 어떤 바람직한 목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설거지를 하다가 실수로 접시를 몇 장 떨어뜨린 것이 아니라
고물상에 내다 팔아 돈을 벌기 위해 멀쩡한 접시를 훔쳐다 깨뜨린 거라고 할까.
처음부터 박인근에게 있어 거리의 부랑자는 잘만 하면 공짜로 돈을 벌 수 있는 물건에 불과했다.
집도절도 가족도 없으니 데려다 마구 다룬다고 해도 누구 하나 찾아올 사람이 없고
공무원들에게는 권세와 돈을 나눠주어 '그게 원래 남의 접시였음'을 따지고 들 수 없었을 것이니
박인근은 대동강 물을 팔아 돈을 버는 봉이 김선달 행세를 하고 돌아다닌 것이다.
나는 세월호 사건 이후로 이렇듯 권력과 돈을 이용해 부패한 사람들이 저지르는 악행을 보면
'분노'보다는 깊은 무력감과 슬픔, 절망, 심지어는 외로움, 불안, 이런 감정들이 먼저 든다.
박인근과 같은 사람이 사는 세상과 나와 그들이 사는 세계 간의 간극은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절대 좁혀지지 못할 것 같다고 할까.
타인이 생각하는 '악'의 의미와 내가 생각하는 '악'의 의미가 너무 다른데
저 사람은 본인의 악함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게 되면 너무 막막하다.
혹시 내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불안하고, 자신의 악함을 인지하지 못하고 굉장히 당연하단 듯이 타인을 상처입히는 장면은 두렵기까지 하다.
타인의 고통을 인지하지 못하는 모습, 혹은 아주 미약하게나마 인지하더라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못하)고 내세우는 신념, 종교, 이런 것들.
박인근의 아내가 성모 마리아 같은 의상을 입고 등장하는 장면은 이 극에서 유일한 코믹 포인트라 심각했던 극 분위기를 지루하지 않게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이 형제복지원 사건의 위선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악함은 과연 어디까지일지, 너무 두렵고 우울해서 극 내내 눈물이 났다.
게다가 폭력 행사하는 장면이 나오면 (그게 개그 요소라 하더라도)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 들어서 잘 못 보는데
이 극에서는 내내 누군가 맞는다(...)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연극이 현실 고발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해피 투게더는 드라마화라기보다는 날것 그대로를 보여주는 '다큐' 느낌이 강했다.
이런 극을 본 건 처음인데도 지루하다는 느낌 없이 끝까지 잘 봤다.
장르와 내용의 다양성을 발견하면 할수록 연극이 점점 좋아진다.
형제복지원 사건의 상세한 전말은 한겨레신문에서 작년 8월부터 10월까지 연재되었다.
http://www.hani.co.kr/arti/SERIES/624
생존자 인터뷰.
http://www.ablenews.co.kr/News/NewsContent.aspx?CategoryCode=0046&NewsCode=001420151119122602835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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