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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리뷰_문화생활/연극

[연극] 160127 바냐아저씨(이윤택 연출)

160127 바냐아저씨





CAST

엘레나_김지숙

바냐_기주봉

아스뜨롭(의사)_곽동철

마리나(유모)_이재희

세레브라꼬프(교수)_고인배

바이니쯔까야(어머니)_이용녀

찔레긴(지주)_이봉규

쏘냐_김미수

심부름꾼_신재일


*스포 다량



안톤 체홉의 극은 공연도 그렇고 텍스트로 접해본 적도 없는 것 같다.

책도 주로 실용서나 한국 현대소설이 취향이라 편파적으로 읽는 편이고 연극에 관심이 생긴 게 얼마 되지 않아서 그간 고전희곡을 읽어야겠다는 생각 자체를 안 했던 듯.

그러다 체홉을 처음 알게 된 건 작년 여름에 프라이드를 보고 나서. 직업이 연극배우였던 여주 실비아가 동료의 죽음을 이야기하면서 "나 그사람이랑 '벚꽃동산' 했어." 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다. 당시에는 '벚꽃동산'이라는 게 실재하는 희곡의 이름이라는 것도 몰랐다(...) 실제 있는 극인지 궁금해서 찾아 보니 체홉은 러시아의 유명한 작가로 챠이카(갈매기), 벚꽃동산과 더불어 이 '바냐 아저씨'(엉클 바냐, 바냐 삼촌)가 대표작이라고.






후.... 무식했던 지난날의 나... 쥐구멍 어딨니.



그렇게 막연하게만 알고있던 도중 마침 체홉 극이 대학로에 올라온다는 걸 알았는데, 우연인지 같은 텍스트를 다룬 극이 아트원과 아름다운 극장에 동시에 올라온다고 해서 뭘 봐야 할지 고민이 됐다. 전자는 중견연극인들이 모여 올리는 극이고, 나머지는 한예종 출신 일본인 연출의 극이라고 하는데 사실 아직 극을 보면서 연출이 어떻다 곧바로 알 정도 수준은 아니기 때문에(...) 연륜으로 극을 노련하게 다룰 듯한 배우진으로 구성된 전자를 택함. 

  







무대세트는 이렇다. 나무로 만든 가구들의 느낌이 아늑하면서도 어딘가 척박한 느낌을 준다. 극중의 바냐의 이미지와 닮았다.



극의 주인공인 바냐는 죽은 여동생의 딸인 소냐와 유모, 어머니, 빈털터리 찔레긴과 같이 살고 있다. 그러다 죽은 여동생의 남편이었던 대학교수가 재혼한 아름다운 부인(엘레나)과 바냐의 집을 방문한다. 바냐는 아버지가 여동생의 결혼지참금으로 집을 사면서 진 빚을 갚고, 여동생이 죽은 이후에도 교수에게 꼬박꼬박 돈을 부치기 위해 몸바쳐 일해 온 삶이 허망하고 남은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엘레나의 아름다운 모습에 반해 새로운 사랑을 꿈꾸지만 엘레나의 거절로 그 사랑은 좌절되고, 대학교수는 바냐의 노고를 무시하고 바냐가 평생을 일해 빚을 갚은 집을 팔겠다고 제안한다. 노모마저도 바냐가 아닌 교수의 편이다. 바냐는 분노하며 교수를 죽이려 하지만 실패하고, 결국 예전과 똑같은 삶을 살게 된다.



바냐의 삶은 고단하고, 무엇 하나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바냐의 주변인물들도 마찬가지. 나이 차이가 많은 마을 의사에 대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품고 있는 조카 쏘냐, 남을 도와주는 걸 좋아하지만 아내를 잃고 빈털터리가 된 찔레긴, 이미 다른 여자와 결혼하고 예전 처가에 신경도 쓰지 않는 사위를 대학교수라는 이유만으로 광적으로 찬양하는 바냐의 노모 등등. 바냐가 사랑하는 엘레나 역시 남편에 대한 사랑이 식고 권태에 사로잡힌 여자라는 점에서 행복을 잃은 사람이지만, 바냐의 구애를 받아들이지 않고 남편 곁에 머무른다. 이렇게 인물들의 상황은 바냐를 비롯한 농민들과, 엘레나-교수로 묶인 상류층으로 나누어 대립된다. 농민들은 괴로운 현실에 절망하지만 결국 현실을 뒤엎지 못하고(이것은 바냐가 교수를 죽이는 데 실패하는 데서도 드러난다) 교수 내외를 부양하기 위해 그전과 똑같이 바쁘게 일하는 삶으로 돌아간다. 



극 내내 이렇다 할 전환점이나 튀는 사건이 없고, 전체적인 인물들이 변화나 발전이랄 것이 없어 평면적으로 느껴진다. 극의 중심인 바냐는 극의 처음부터 끝까지 분노하고 슬퍼하는데, 무엇 하나 바꿀 수 없고 새로운 사랑도 할 수 없다. 영화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의 서양 고전 버전이 있다면 이럴까 싶다. 그저 내리막밖에 없는 삶. 그와 대비되는 화려한 엘레나의 외모와 의상, 점잔빼는 교수의 행동들이 농민들이 처한 상황을 더욱 부각시킨다. 텍스트를 읽어본 적이 없어서 원작자인 체홉이 의도했던 주제가 어떤 것이었는지 알 수 없으나, 내가 보고 온 이 '바냐 아저씨'라는 연극의 주제이자 제재는 바냐로 대표되는 농민(혹은 하류층)들의 고단한 삶이라 생각된다. 



다만 그저 무기력하고 힘든 삶을 조명하는 것만이 연출자의 의도였던 것인지 알 수 없어 좀 혼란스러웠다. 바냐가 금방 교수를 죽일 것처럼 하더니 금방 또 분노를 가라앉히고 혹은 체념하는 심리에 대한 설명이 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고전 재연에 충실했다는 느낌은 들지만 이 극을 보는 현대의 관객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가질 수 있을지...그 역시 금방 찾기는 어려운 것 같다.



중년 연극인들의 연기는 확실히 연륜이 느껴졌다. 젊은 배우들이 보여주는 생동감이나 쫀쫀함(?)도 좋지만, 나이든 연기자들은 목소리부터 확연히 다른, 어떤 묵직함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극의 흘러감을 파악하는 데서 느껴지는 여유로움도 좋았다.



다만 대사 실수가 너무 잦았다. 한두 번 버벅거리는 수준이 아니라 말의 어미와 뒷부분이 아예 잘리는 정도였다. 극을 보는 중에 배우보다 관객이 불안하면 안되는 거잖아(...) 딱히 이런 부분에 예민한 편이 아닌데도 꽤 자주 '응??지금 대사 잘린 거야??'하는 생각이 들어서 원래 이런 건가 헷갈릴 정도였는데 커튼콜 때 이지숙 배우가 첫공이라 실수가 잦았다고 사과했다.



사실 관객한테 표를 팔아서 공연하는 프로라면 첫공연이라고 해서 실수가 있었다는 건 말이 안 되는 변명이라고 생각하지만... 연극단 대표가 직접 사과하면서 재관람 기회를 드리겠다고 빠르게 대처해서 그나마 괜찮았던 것 같다. 

근데 후기 찾아보면 아직도 대사 실수 많다는 얘기가 있다...



하지만 대사 때문에 부분부분 끊길 뻔한 흐름을 잡아준 것도 역시 오래된 경험에서 나오는 노하우 덕이 아닐까 싶다. 전체적으로 감상 종합하자면 괜찮은 극. 무엇보다 중년 연극인들이 모여 한 무대에 선다는 것 자체가 장르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는 어려울 것 같아서.... 보러 다녀온 건 잘했다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