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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리뷰_문화생활/연극

[연극] 160224 NT Live 햄릿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 맞아 연뮤계에서도 셰익스피어 재해석 작품이 줄을 잇고 있다.

작년에 영국 내셔널 씨어터(NT: National Theatre)에서 공연되었던 햄릿을 우리나라 국립극단에서 실황 상영.

 

 

 

개인적으로 베네딕트 컴버배치보다는 영국 내셔널 씨어터가 궁금했다. 천문학적인 비용이라는 한밤개의 무대를 구현해 상영한 곳이 아니던가;_;

 

역시 무대미술이나 배우들의 의상은 휘황찬란했다.

 

온통 푸르게 칠한 궁전 내부와 벽에 칼 붙인 디테일하며, 초반에 벽이 올라가며 드러나는 만찬장면은 연극의 스케일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

 

클로즈업하는데 연회복에 달린 금장장식까지 세밀하게 신경쓴 티가 나서 놀랐다.

 

식탁이 워낙 커서 극 내내 저 식탁을 활용해서 극이 전개되나 싶었는데 한 장면에 활용하고 싹다 치운다.

 

그리고 회의하는 장면에서 온갖 사무집기가 잔뜩 올려진 책상으로 등장. 그리고 이내 또 치운다. 영국 극장 돈 많군요(...)

 

무대장치의 스케일은 인터미션 후 2막에서 한번 더 놀랄 만했다.

 

1막은 무대의 출입구로 거대한 모래폭풍이 몰아치는 장면으로 끝난다.

 

이게 영상효과인지 진짜인지 분간이 안 가도록 신기한 장치였다.

 

그런데 2막에서는 화려했던 궁전 내부에 온통 그 흙이 가득한 상태로 조명이 켜진다.

 

흙이 깔린 정도가 아니라, 포크레인으로 들이부은 것처럼 무대 출입구 쪽마다 산처럼 쌓아놓은 형태다.

 

20분밖에 안 되는 인터미션 동안 그 장치를 어떻게 한 건지 계속 관찰하게 된다.

 

(아마 진짜 흙을 쌓은 건 아닌 것 같고 언덕 모양 소품인 것 같은데 그런 거면 꽤 잘 만들었다. 클로즈업되는 영상에서도 구분이 잘 안 감.)

 

 

배경과 의상은 아주 현대도, 아주 고전도 아닌 어드메에 있지만 확실히 고급스럽다.

 

겨울이야기에서도 대사는 고어체고 의상은 현대던데 이게 연출들 사이에서 힙하고 글로발한(...) 유행인가 싶다.

 

근데 내 취향엔 아무래도 그냥 싹다 고전으로 하는 게 나은 거 같다.

 

 

 

그런데 아쉬운 건 눈이 즐거운 것 이외에는 눈에 띄는 장점이 없다는 것이다.

 

일단 극장에 머무르는 시간이 너무 길다.

 

본격적인 극 시작에 앞서 30분 동안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인터뷰를 틀어주는데 이 배우 팬이 아니면 30분 지나면 벌써 슬슬 지친다(...)

 

이 인터뷰, 인터미션까지 합치면 전체 상영시간은 무려 3시간 30분. 끝나자마자 셔틀버스를 타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 내리니 11시 6분이었다.  

 

여기서 인터뷰 영상을 포함한 1막 상영시간이 2시간이다. 의도한 불균형인지 모르겠는데 1막 끝나고 엄청나게 지치는 느낌.

 

만약 극이 재미있었다면 덜 지쳤을 텐데 극작가가 셰익스피어 광팬이라 욕심을 낸건지, 아니면 건드리기가 힘들었던 건지, 그것도 아니면 그냥 안이했던 건지 대사가 원작 희곡을 전부 가져온 것처럼 마냥저냥 길었다.

 

게다가 영국식 발음에 고어체 대사를 엄청나게 길게 늘어놓고 있으니 아무리 자막에 의존한다 해도 웬만한 영어실력으로는 온전히 극을 따라가기가 좀 힘들었다.

 

(런던에 사는 지인이 원어민도 셰익스피어 희곡은 알아듣지 못한다고 위로해 주긴 했으나 일단 내가 웬만한 영어실력이 아니다...)

 

등장인물들의 대사는 또 독백 위주이다 보니 개개인의 연기는 참 좋은데, 조화롭다는 느낌은 덜했다.

 

블랙홀에 빠진 듯이 길고 긴 1막이었다. 핸드폰 켜서 시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 참고 너무 긴 독백들은 자체 스킵하면서 좋아하는 미술과 분장 등을 관찰했음.

 

오히려 휘몰아치듯이 결말을 내고 끝나버리는 2막에서 오필리어와 거트루드의 연기를 보고 좀 찡했고 재밌게 봤다는 느낌이 듦.

 

어째 2막이 스토리상으로는 더 좋다. 인터미션때 가는 사람 많던데 가면 안된다(...) 2막 보고 가세요ㅠㅠㅠㅠ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물론 연기가 좋음. 하도 혼자 화를 길게 내서(...) 보다가 저기 괜찮으신지... 하고 여쭙고 싶다.

 

그리고 주인공인데 옷이 제일 안 예쁨. 이렇게 돈냄새가 빵빵 터지는 연극에서 주인공 옷이 제일 허름함.

 

NTlive 홈페이지 들어가서 사진 퍼왔음.

 

 

 

이게 내가 보고 눈돌아갔던 첫 연회장 장면이다. 햄릿 혼자 아버지 죽음을 애도하며 저 애매한 색의 골덴 쟈켓 떨쳐입고 앉아 있다(...)

 

까리한 상복이 얼마든지 많은데 이게 무슨 일이야.

 

영국 왕족들 저런 옷 입어도 되는 건지 국가 품위 유지 차원에서 고심해 주길 바람. 아니면 햄릿 너 이새기 지금 반항하냐? 반항하는 거 맞다만. 

 

 

 

덴마크에서 영국으로 끌려갈 때 복장이다. 이거 나 대학생 때 맞춰 입은 바람막인데(...) 햄릿 너 혹시 동창이니. 근데 나 여대 나옴.

 

 

 

 

이건 진짜 분노스럽다. 한 나라의 왕자가 극 내내 이렇게 성의 없어 보이는 검은 티셔츠에 검은 바지를 입고 등장한다.....

 

 

 

 

 

 

 

비교를 위해 거트루드와 오필리어 의상 가져왔다. 오필리어가 들고 있는 사진기를 보면 완전히 현대 배경은 또 아닌 것 같기도 하네.

 

무튼 오필리어 드레스의 정성스러운 레이스와 거트루드의 촤라라한 실크 재질 의상에 대비해 보면... 햄릿 사실 거트루드 친아들도 아닌 거 아냐?

 

 

 

 

나는 베네딕트 컴버배치를 좋아하긴 하지만 딱히 잘생겨 보일 정도까지 팬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팬이라면 분명 만족스러울 듯하다. 본인의 최애에게만 못생긴 옷을 입힌 의상 디자이너를 향한 분노 컨트롤이 가능하다면

 

그리고 나는 난생 처음으로 영국에 가고 싶어졌다. 

 

비 오는 것도 무지 싫어하고 돈 주고 맛없는 음식 먹는것도 혐오하는 내가 내셔널 씨어터로 덕질 원정을 하러 영국에 가고 싶어졌다는 말이다.  

 

몇몇 장면들은 영상화에 치중하느라 조화롭지 못한 부분도 보이지만, '햄릿'은 바다를 건너가서 보고 싶을 정도로 시각적으로 충분히 아름다운 극이다.

 

셰익스피어의 원작 대사를 사랑하는 사람이고 영어를 잘하면 대사를 곱씹으며 듣는 맛도 있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