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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리뷰_문화생활/연극

[연극] 160216 떠도는 땅

*스포일러 다량


창작산실의 창작연극 라인업 중 다섯 번째 작품인 '떠도는 땅'

 


우리나라 창작연극도 좋은 극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관심가지려고 노력하지만 내 시간과 돈도 중요하다보니ㅠㅠ... 선뜻 선택하기 어려운 게 사실. 아직 연출이나 무대관련 지식이 빠삭하지 못하다 보니 결국 배우를 중심으로 볼 작품을 선택하게 된다. 떠도는 땅은 일단 '맨 끝줄 소년'에서 정말 최고라 생각했던 전박찬 배우를 보고 예매했는데, 시놉시스도 꽤 흥미로워 보였음.










포스터랑 사진 괜찮다. 본 순간 넘나 취향이어서 심장튀어나올 뻔...



극 전반적으로 주인공 미스타 노가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러 고향에 내려와 벌어지는 미스테리한 사건들을 나열식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느낌.

나열식이라는 말은 극 내 에피소드들 간 큰 연관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는 것.


사실 이 직전에 본 '고제'가 학생운동이나 노동운동 같은 소재를 담고 있기에 이 극도 시사적 부분을 건드리는 극이 아닐까 해서 열심히 봤는데 딱히 그런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 결론이다(...)



미쎄스 노와 메인 카피가 이야기하듯 이 극은 '그냥 미스테리, 풀 수 없는 미스테리'를 보여주는 스릴러 혹은 공포물이다.



미스타 노가 당도한 고향은 이미 불안하고 공포스러운 상황. 닭들은 죽어나가고, 첫사랑은 팔을 잃고 늙어버렸으며, 연쇄살인마가 출몰한다는 흉흉한 소문마저 돈다.

이 와중에 미스타 노는 아버지의 땅을 팔아 빚을 갚겠다는 계획을 세우지만 아버지의 시신은 어딘가 사라져버리고, 빚에 쫓기는 부부는 시신 없이 장례식을 치러 버리자는 결론을 내리는데, 그 순간부터 이상한 일들이 본격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함.



이 '이상한 일들'을 표현하는 방법은 그야말로 관객의 오감을 괴롭히는 방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시각적으로는 닭의 시체들, 푸석푸석한 등장인물들의 안색과 머리카락, 미스타 노의 꿈(또는 환각, 또는 현실) 속에서 아이들이 옷을 벗고 기괴하게 움직이며 섹스를 표현하는 모습, 어지럽게 흩어진 소품들 그리고 소년 클라우디오의 모습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올빽+수염 분장의 찬배우(근데 사실 되게 섹시하고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_-a)

청각적으로는 라디오의 지직거리는 소음과 알 수 없이 웅웅대는 효과음들, 욕설과 적나라한 대사들로 불편하게 하고 

심지어 초반에는 무대 위에서 진짜 불을 지피고 향을 뻑뻑할 정도로 피워서 후각적 자극까지 준다

개인적으로는 공포영화 취향인 편이라 위에 것들 다 괜찮았음. 오히려 공포영화 보는 느낌으로 엄청 몰입해서 봐서 재밌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다만 아이들이 옷 벗는 신이 보기에 너무 불편했고, 마지막에 가래 농담은 듣는 순간 진심 객석에서 헛구역질 할 뻔. 굉장히 다양한 장치들이 마련되어 있으니, 한번 보면서 나의 호불호는 어디에 있는가를 낱낱이 알아보는 것도 좋을 듯(...) 나는 내가 1) 더러운, 성적인 농담 2) 불필요한 신체노출 3) 폭력 세 가지를 못 참는다는 것을 여실히 느꼈다.



내가 보고 느낀 이 극의 주제는 모든 것(닭, 아버지의 유산으로 대표되는 땅)을 물질로만 환산하는 세태에 대한 비판인데, 그걸 표현하는 장치가 지나칠 정도로 많고 공격적인 느낌이 들어서 오히려 후반부에는 미스타 노가 불쌍해질 지경이었다. 어차피 자기 것인 땅인데 팔아서 빚 좀 갚으면 안돼?ㅜㅜ 


또 그런 연쇄살인마, 첫사랑 연지, 딸 연지, 아내의 불륜, 시신의 실종, 귀신인지 뭔지 알 수 없는 존재의 출몰 등의 사건들은 미스타 노를 향해있지만 그 장면과 소재들 간 연결고리, 심지어 미스타 노와의 관계도 희미함. 그냥 그런 사건들이 두서없이 '일어남'. 예컨대 아내가 불륜을 저지르게 된 이유라든가 첫사랑 연지가 팔을 잃고 남편을 잃은 이유가 미스타 노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 전혀 설명해 주지 않는다. 한편 노인들의 이야기 역시 미스타 노와 주제 간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연출은 불친절한 태도를 유지한다. 여기서도 그냥 닭이 떼죽음당하는 사건들이 그냥 '일어남'. 저스트 해픈... 음험한 극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것이 보이긴 하나 대체 왜? 라는 물음표를 지울 수는 없다. 너무 원인만 따져 묻지 말고 목적론적 시각을 가지라고 말하면 할 말은 없다(...)


게다가 작품 마지막 부분에서 노인들이 '그 땅이 전쟁터라 병사들이 여럿 죽었다' 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좀 실소할뻔 하긴 했다. 초등학생 때 자주 듣던 도시괴담 같은 데에서 자주 인용되는 클리셰 아니던가... 알고 보니 공동묘지였다든가 전쟁터였다든가 하는 것들. 어렴풋이 느낀 물질적 세태비판이라는 제재 이외에 명확한 주제 찾기를 그만두고 스릴러 연극이라 잠정 결론지은 것도 이 대사의 영향이 컸다. 또 다른 큰 영향을 준 장치는 객석에 앉혀놓은 마네킹.... 극 끝나고 나가다가 기절할 뻔=_=..... 이것도 나 초등학교 때 담력테스트 외에 처음 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더 보겠다고 잡아놓은 표를 버리지 않은 이유는 비록 연결고리는 희미할지라도 개개별 장면은 상당히 선명하기 때문이다. 배우들의 연기도 좋고. 미스타 노와 미쎄스 노는 자연스러워서 좋았고, 살인마의 대사 처리는 처음에는 과하게 꾸며서 어색한 것 같다가 오히려 후반부로 갈수록 좋다는 느낌을 줬다. 찬배우는 조연임에도 전작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연기를 보여줘서 인상깊었고. 역시 잘한다는 생각이... 


간간이 삽입해 놓은 웃음코드도 취향에 맞는 편이라 재밌었다. 워낙에 비틀리고 음산한 분위기를 좋아하는지라... 흔한 클리셰다 생각되는 부분이 있었던 건 맞지만 극의 전체적인 느낌은 조악하다기보단 실험적인 느낌에 가까워서 나쁘지 않았다.





 







전박찬 배우. 커튼콜 언제부터 언제까진지 감이 안잡히는데다 아무도 사진을 찍지 않아서.... 연사 눌렀는데 찍힌 사진이 7장이었다(...) 왜죠. 인사 좀 길게 해주세요. 이런 덕후 어색한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