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공이 언제였는지 생각이 안 난다
이제까지 5번 정도 관극했음.
이제서야 후기를 써보는 건
물론 나의 극강의 게으름이 80%(....)정도 차지하긴 하지만
스토리 자체가
그냥
괴로워서
라는 이유도 한몫한다.
이하의 글은 후기라기보다는 그냥 내 일기나, 회고록 같은 글.
"
마지막으로 수학 100점 맞아본 게 언제야?
난 중학교 3학년.
그땐 내가 1등이었지.
아무것도 두려울 게 없었어.
"
내가 외고 입시를 준비하기 시작한 건 중학교 2학년 때였는데
그 때, 나는 처음 남들에게 뒤처진다는 게 또는 뒤처질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알았다.
나는 언제나 반에서 1등 아니면 2등이었고 항상 선생님들에게 예쁨받는 애였는데
그렇게 서울 구석 변두리 중학교에서 용의 머리 노릇을 하다가
외고 입시를 위해서 학원에 등록해서 가 보니
거기엔 온통 나와 똑같은 아이들 뿐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 때부터 수능 입시날까지 늘 괴로웠던 것 같다.
입시 절차는 물론 나보다는 엄마와 학원선생이 알아봐서 가장 맞는 학교를 골라 운좋게 외고 입학에 성공했는데
(남부 경기권 외고를 말할 때 우연찮게도 박배우가 나온 학교랑 함께 묶이는 학교다. 최근에 알았는데 좀 신기)
거기엔 나와 똑같은 아이들이 오히려 적었다.
전부 다 나보다 뛰어났다.
'민영'이처럼 선택받은 아이들도 엄청나게 많았고
모두가 시험점수에 혈안이 된 '명준'이들이었고
어중간하게 엄마 등에 떠밀려 책상앞에 앉아만 있다가는
금방 뒤처지고 만다는 사실은
입학 후 수없이 치러지는 시험들의 성적표를 통해서 나를 압박했다.
좋은 기억들도 있었지만
그런 일들은 17살, 18살, 19살 아이들이 겪어야 하는 압박감에 비교하면
그냥 너무 소소한 것들이어서
지나서 생각해보면
그 당시의 나와 친구들이 조금 안쓰럽기까지 하다.
"
숨고 싶은데
숨을 곳이 없어서 저는 이렇게 영영 도망칩니다.
"
물론 그런 과정을 '성장의 시간'이라며 오히려 즐기거나
이게 얼마 없는 기회라며 '명준'이나 '수환'이처럼 목을 매고 열심히 하는 사람들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나처럼 작은 것에 만족하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그렇게 아등바등해서 열심히 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사실 나는 조금 욕심을 부리지 않아도 괜찮아요.
"
네
저는 이제 다 그만두고 싶습니다.
1등급에서 2등급,
그 숫자 하나가 절 미치게 만들어요.
"
몇 번이나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었다.
내 직업, 내 적성에는
어쩌면 나만 관심이 있었던 거여서
아무도 내가 '성적에 욕심부리지 않아도 괜찮아요'라고 생각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나는 타인의 가치관에 내 목을 매고 정당화시키려고 언제나 애를 썼다.
다 나를 위한 일이고
다 엄마를 위한 일이고
이게 다
좋은 게 좋은 일이니 나만 열심히 하면 좋아질 거라고
그래도 괴로움이 영영 없어지는 건 아니었다.
언어과목을 잘 했는데 이상하게 역사과목은 쥐약이었고
수학은 싫어하는데 생물학은 잘 했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편차가 심해서
좋아하는 과목은 전교 한자리 등수 성적이 나오고 못하는 과목은 평균이나 하면 다행이었다.
(생각해 보면 태어날 때부터 덕후 기질이 다분했을 뿐임-_-)
근데 고등학교는 문과 아니면 이과밖에 없잖아.
생물학이 포함된 과탐을 하려면 수학을 해야 하는데, 수리점수가 자신이 없어서 결국 문과를 선택했고
3년 내내 비싼 돈 들여 과외 받으면서도 마음처럼 되지 않아서 울면서 수학을 공부했다.
그랬는데도 결국 내신이나 수능이나 좋은 등급은 받지 못했다.
수리영역에서 한 문제 차이로 미끄러져 등급이 바뀌었는데
수능을 본 지 내일모레면 근 10년인데도 그 4점짜리 문제의 뒤집어진 이차함수 그래프는 아직까지도 기억이 난다.
"
읽지마
"
그러다 보니까 죽고 싶어진 적도 있다.
2학년 때였던가 중간고사 수학 시험을 보고 가채점 결과에 절망하면서
그냥 이렇게까지 할 필요 있나, 아무리 해도 안 될 것 같은데
엄마 아빠나 둘 중 하나의 월급을 통째로 나한테 써가면서 이럴 필요가 있을까
기숙사 방에서 룸메이트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몰래 울면서 생각한 적도 있다.
명준이의 자살기도 장면을 처음 봤을 때
너 뭐냐고 소리지르고 뛰쳐나가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그 때의 기분이 허락도 없이 몰려들어서 화가 났고 너무 괴로웠다.
하지만 어른이 된 나라고 하더라도
저 당시의 명준이에게 혹은 학창시절의 나에게 딱히 해줄 말은 없다는 게 현실이라서
그냥 안쓰러웠다 명준이가.
몇 번을 봐도 자살기도 장면은 마음이 너무 아프다.
자살을 거꾸로 하면 살자라더니
자살할 용기를 다른 데로 쏟아부어서 결국 처절하게 집착하게 되어버리는 감정 변화도 그렇다.
"
나는 필요해, 종태야
"
처절하게 현실을 이야기하는 '모범생들'이 그래도 판타지인 건
종태가 별볼일 없이 카센터를 차려 살아간다는 결론 때문인 것 같다.
현실에서는 종태가 그렇게 살고 싶다고 하더라도 주변에서 가만히 두지 않아서
정학은 돈으로 무마되었을 것이고
머리가 좋지 않다면 도피유학을 보내 학벌을 세탁했을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최소 카센터가 의정부에서 제일 큰 어마어마한 그런 규모이거나
취미로 오전에 공업사 출근해서 차 좀 만지다가
오후에 임차인 월세 독촉하러 가는 그런 건물주의 삶일 가능성이 높지.
날 괴롭게 하는 극을 굉장히 자주 보러 가는 이유는
글쎄, 아마 "나만 그랬던 건 아니었던 거구나" 하는
아주 얄팍한 위로를 얻기 위해서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두결한장 이후 박성훈 배우가 맡은 역할을 쭉 봐오고 있는데
명준이가 가장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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