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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리뷰_문화생활/연극

[연극] 160605 갈매기



160605 갈매기

CAST 이혜영, 김기수 등 고정 캐스트



난 체홉을 잘 모름. 고등학교 문학교과서나 문제집에 잘 나오지 않는 작가였기 때문임.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상한 게 문학의 장르를 시, 수필, 소설, 희곡으로 나누면서 희곡의 비중은 왜 그리 작았던 걸까) 체홉 작품은 무대 위에서 본 게 전부다.


'갈매기'는 보는 내내 아트원에서 봤던 '바냐아저씨'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만에 찬 재력가와 그를 동경해서 사랑에 빠지는 가난한 시골 사람. 그리고 당연히 그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고, 주인공의 주변인물들도 역시 비슷한, 비참한 삶을 살아가는데, 사실 재력가의 삶이라 해서 겉에 보이는 것만큼 화려하지만은 않다. 그 누구도 행복해지지 않는 극. 이 작가 좀 회의주의나 냉소·허무주의에 빠져 있는 거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비극 매니아라 자칭하며 한 명도 빠짐없이 죄다 망하는 극 엄청 좋아한다고 이야기하는데, 체홉 극은 별로 막 엄청 좋다는 생각이 안 드는 거 같다. 러시아 감성이 안맞나(...) 싶기도 한데 그냥 서양 고전 텍스트를 좋아하지 않는 듯. 많은 사람들에게 호평을 받은 작품이라 해도 거의 불호를 외치며 나오는 경우가 다반사라... '잘 만든' 극과 '내 취향'에 맞는 극 그리고 그냥 '좋아하는' 극이 다 서로 다른 탓도 있다. 


또 하나 이유를 찾아보자면, 체홉의 텍스트는 '드라마틱'한 부분이 적다. 개개인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흘러가듯이 보여주기 때문에 무대 위에 올렸을 때는 '호흡이 길다'거나 '지루하다'라는 생각이 듦. 어딘지 현실주의적 고전 '소설'을 수정해서 희곡화한 작품 같다는 인상이 드는데 갈매기도 마찬가지였다. 


국립극단의 갈매기는 이런 부분을 보완하려 한 것인지 여러 시각적 장치와 음향적 효과를 사용한다. 극중극이 시작될 때 무대 위까지 내려온 조명 장치들이 조명을 받고 있는 모습은 어쩐지 전율이 일었다. 무대 위는 이 극의 무대이자 텅빈 극중극의 무대로, 그 깊고 넓고 어두운 느낌을 유지하면서 상하좌우로 무대 활용에 공들인 느낌. 아르까지나가 오필리어의 독백을 재현하는 저택의 (아마도) 드레스실을 표현하기 위해 천장에서 내려오는 드레스들과, 종종 등장하여 인물들을 가리고 보여주는 거대한 거울들, 천장에 매달린 세트 위에서 로또 게임을 하는 인물들과 그 뒤에 내려오는 비뚤어진 무대장치, 그 앞에 쏟아지는 비와 종이 같은 시각적 장치들. 반면 음향적 자극은 주로 장면이 전환될 때 사용된 클래식 음악이나, 마샤가 병을 집어던져 깨뜨리는 소리, 빗소리, 로또 게임을 하며 책상을 치는 소리 등이 있다. 아쉬운 건 그래도 대사가 너무 장황하거나 등장인물들 간에 정확히 주고받아진다는 느낌이 없다 보니 시각적 장치들은 자극을 오래 주지 못하고 예쁘고 비싼 병풍이 된다거나, 음향적 자극들은 대사의 앞뒤에 포인트로 작용할 뿐이어서 긴장감을 유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꽤 공들여 좋은 장치들을 보여주지만 그래도 결과적으론 지루하다구.


하지만 이 극이 매력적인 건 각 등장인물이 자신만의 스토리를 갖고 있다는 점이었다. 아르까지나, 뜨레고린, 니나, 뜨레쁠례프 같은 주요 인물 외에도 시골 주민들 역시 자신이 원하는 바가 있다. 예를 들어 하녀는 무대에 아무도 없다는 걸 발견하고 춤을 추며 노래하는데, 평소 꿈이 배우였거나, 혹은 그냥 답답한 현실이 지겨웠을 수도 있지. 아르까지나의 오빠인 늙은 소린도 끊임없이 '난 살고 싶어!'라고 소리치며 노래를 부른다. 그 노래가 백세인생(...) 재촉 말라 전해라. 모든 등장인물들이 자신만의 비극을 가지고 큰 비극에 구성원으로 참여한다. 


그래도 바냐아저씨보다 갈매기가 조금 더 많이 무대에 오르는 이유는 갈매기가 조금 더 극적이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늦은 나이에 찾아온 사랑을 포기하고 원래 살던 방식으로 체념하며 살아가는 스토리보다, 이리저리 얽힌 삼각관계로 이루어진 인물관계와 그 사이에서 아이를 잃고 비참하게 살아가는 여자와 꿈이 좌절되자 자살하는 청년의 얘기라... 사실 갈매기는 잘못 세게 다루면 막장드라마로 갈 스토리라 지금 연출이 세련된 거라는 생각은 하지만.... 심심한 걸 어떡해-_-;


배우들은 전부 좋은 연기를 보여주는데 특히 포스터 전면에 내세워진 아르까지나, 이혜영 배우는 너무 아름답고 발성이나 연기도 너무 좋았다. 그리고 뜨레쁠례프 역의 김기수 배우는 정말 잘하는 것도 잘하는 건데 어딘가 진짜 기묘하게 최애님을 연상시키는 부분이 있어서 계속 시선이 갔음. 목소리나 외견보다 스타일이나 풍기는 분위기가 비슷하다고 할까. 그냥 단순히 최애님이 뵙자옵고 싶은 것도 있겠지만. 무튼 또 주워담아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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