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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다음날_일상다반사/소롱의 생각

집안일이라는 것

 

 

 

"혼자 살아보니까 어때?"

 

이런 질문에 대해 자취 신입생은 이렇게 답한다.

 

"모든 집안일을 내가 다 해야 돼. 그게 장점이자 단점이야."

 

모든 집안일을 내가 다 해야 한다. 오해받기 쉬운 문장이다.

 

한 번은 이 말을 주부들이 있는 단체카톡방에 올렸다가 주부들로부터 볼멘소리를 들었다. 그럼 결국 집안일을 해줄 엄마가 없어서 불편하다는 얘기 아니냐며. 엄마는 네게 집안일을 해주는 사람이냐며. 하지만 그것과는 조금, 아니 많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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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전 어느 날 늦은 오후에 밤샘 당직근무를 하러 출근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늦은 점심을 먹고 설거지를 하려는데 갑자기 물이 나오지 않는 게 아닌가. 수도꼭지를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의아해하는데 건물 내 방송으로 '6층 수도관 파열 때문에 잠시 단수된다' 라는 안내가 나왔다. 출근시간은 촉박하고, 아침 퇴근 후에 친구들과 여행을 가기로 했던지라 짐도 많아서 맘은 더 촉박했다. 결국 집에 돌아와서 설거지를 하기로 하고 그대로 회사로 출발.

 

무사히 밤샘근무를 마치고 이른 아침에 비행기를 타러 공항에 갔는데 아뿔싸 신분증이 없는 거다. 다행히 비행기 시간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있어서 택시를 타고 집에 잠깐 들르기로 했다. 급하게 현관문을 열었는데 어디선가 들리는 쏴아아아 하는 물소리. 등골이 섬짓했다. 싱크대에서 물이 하염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전날 단수된 싱크대 수도꼭지를 열었다 닫았다 하다가 열어 놓은 상태인 걸 모르고 집을 나선 거였다. 관리실에 전화로 수도가 다시 나오기 시작한 시간을 계산해 보니 최소한 열두 시간은 물이 콸콸콸(하필 또 제일 세게 틀어놓은 상태였다) 흐른 걸로 보였다. 싱크대를 막아놓지 않아서 물이 넘치진 않은 걸 그나마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폭탄처럼 터질 수도세 생각에 공항으로 가면서 얼마나 자학을 했던지. 

 

수도를 잠그고 나간다, 또는 깜빡 잊고 틀어놓은 수도를 잠근다-는 건 집안일에 속하는 것이지만 굳이 엄마가 할 때 더 빛이 나는 일은 아니다. 싱크대에 손이 닿는 꼬마애만 있어도 해결이 가능한 문제 아닌가. 내달 수도세의 상승분은 내가 혼자 살기 때문에 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옷을 제때 빨고 다려 입거나 집을 멋들어지게 꾸미거나 하는, 그렇게 무언가 평균만큼, 혹은 평균보다 조금 더 나은 모습으로 생활을 추스려 가는 플러스(+)의 차원이 아니다. 나의 실수에 대해 책임을 오롯이 다 져야 하는 것. 누군가 나누어 짊어져 주거나 수도꼭지 잠그라고 지적해 줄 수도 없는 것. 집안일을 챙기지 못했을 때 생기는 마이너스(-)의 차원(얼마나 넓고 깊고 비싸고 아플지 예상이 불가한)에 나 혼자 서 있어야 한다는 문제다. 혼자 살아가야 한다, 라는 것의 의미가 그 단순하고 멍청한 순간에 가장 크게 와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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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인터넷에서 '혼자 사는 젊은 사람이 며칠간 보이지 않아 지인들이 신고해 집 문을 따고 들어가 보니 화장실에 갇혀 죽어 있더라' 라는 이야길 본 적 있는데, 수도꼭지 사태를 겪고 나서는 정말이지 진지하게 저 도시괴담 같은 실화 속 주인공이 내가 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을 하고 있다. 자취인들이 그래서 핸드폰을 화장실 갈 때도 들고 간다는데, 원래는 핸드폰 습기차는 게 싫어서 화장실에 잘 안 가지고 들어갔던지라 습관 들이기가 좀 힘드네. 시리야, 혹시 내가 끝내 습관을 못 들여서 화장실 문 너머에서 널 부르더라도 꼭 대답을 해줘야 한다. 내 동거인이라 할 만한 건 지금 너밖에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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