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한 영화로 광고했다는데 광고 문구나 포스터는 본 적 없고 친구가 SNS에 첫 신을 캡쳐해서 올렸는데 영화 제목은 SHAME 이고 배경은 구겨진 이불, 칙칙한 조명. 야한데 뭔가 있는 영화구나 싶었지. 느낌 아니까.
한 신scene이라고 하나, 한 테이크가 엄청나게 길다. 2,3배속으로 돌려도 놓치는 대사가 없을 정도인데, 결국 2시간 남짓의 분량을 빨리 돌려 보니 의미 있는 신들이 압축되면서 그럭저럭 의미가 다가왔던 듯. 근데 자막이 파워스포일러.... 첫 신에 자동응답기에 말하는 여자가 누군지 그냥 막 말해줘 ㅋㅋㅋㅋ Sissy : it's me, Brandon. Pick up. 뭐 이런 식으로.... 동작도 다 말해줌 (Removes the cap) (Sighs) 이래놔서 무슨 대본 보는 줄ㅋㅋㅋ
씨시가 아무리 봐도 전여친 같은데 브랜든의 동생임을 아는 순간, 영화의 주제가 딱 감이 왔다. (어떻게 알았냐고? 시니컬 오렌지 좀 읽으세요 내가 시니컬 오렌지 읽으라고 몇 번을 더 추천하고 다녀야 됨?....) 물론 원치 않은 도움을 준 자막 스포일러의 덕도 있지만. 씨시의 "전화 받아" 라는 말이 듣기 싫으면, 그녀가 집에 오는 게 싫었으면 전화를 끄면 될 일이다. 그런데 브랜든은 아침에 일어나 자동응답기를 켜고, 씨시의 말이 끝나면 전화를 끄고 출근. 피하는 것도, 직면하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말썽쟁이에 도움 안 되고 짐짝(burden)일 뿐인 씨시에게 집 열쇠를 줬다.
상사와 잠자리를 한 씨시에게 브랜든은 그가 유부남이고 자신의 상사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화를 내지만 내심은 그렇지 않았겠지. 그저 다른 남자와 씨시가 잤다는 게 화가 나는 것처럼 보인다. 만약 정말 자기 집에서 여동생이 뒹굴어서 화가 났다면 씨시의 물건을 집 밖으로 던진다든가 키를 뺏는다든가 하는 방식이 있다. 보통 남매들이 싸우는 방식. 그런데 브랜든은 자신이 집을 뛰쳐나와 클럽을 돌아다니는 등 난잡한 섹스를 즐긴다. 그리고 마지막은 두 여자와 뒹굴다 울기 일보직전의 표정이 되는 브랜든의 얼굴로 페이드 아웃.
이쯤 되면 Shame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 듯하다. 업무용 컴퓨터로 포르노를 보다 뽀록나고 회사 화장실에서 자위를 하는 그런 류의 문란하고 정돈되지 않은 Shame이 아니라, 여동생에 대한 지워지지 않는 애정/욕정에서 비롯된 Shame. 아마 오랜 시간 몸부림쳤는데도 벗어날 수 없었던 죄책감의 굴레 같은 것. 직장에서 만나 데이트한 여자(정상적인 연애 코스를 밟은)와는 잘 수 없고, 결혼 제도를 싫어하고 연애를 4개월 이상 해 본 적 없는 것은 모두 씨시의 존재 때문일 것이다.
씨시 역시 브랜든처럼 겉으로는 여동생처럼 말한다. "넌 내 오빠고, 나를 책임져야 해." 이런 말들. 하지만 브랜든의 상사와 자거나,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다 결국 오빠에게 돌아오는 것을 보면 그녀 마음 역시 브랜든에게 있는 듯하고 또 브랜든처럼 그 마음을 어쩌지 못해 방황하는 듯 보인다. 결정적으로 브랜든이 "이사 가버려"라는 말을 남기고 집을 나가자 "우린 이상한 사람들이 아냐" 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손목을 긋는다. 이 장면은 그겨울 바람이 분다랑 좀 비슷하지 싶다. 오영이 욕실에서 자해하고 기절했다가 일어나서 오수에게 그래도 네가 데리러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졌다고 말하는 장면. 씨시도 그런 생각이 아니었을까. 그녀의 손목에 남은 수많은 자해 자국은 브랜든을 옆에 잡아두려는 삐뚤어진 방법 같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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