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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리뷰_문화생활/뮤지컬

[뮤지컬] 160603 쓰릴미




160603 쓰릴미 

CAST 강영석/정동화



이 극 자첫은 연뮤 입덕 전이었음. 이 블로그 뒤져보면 그거 후기도 있을텐데 무튼 대표적인 덕극으로 불리는 이 극이 머글이었던 내 눈에도 존잼꿀잼이었던 걸 보면 역시 덕후의 피는 속이지 못하는 듯. 그렇게 2014년에 한번 런꽃으로 자첫하고 2015년에는 연뮤 개초짜라 본진 공연 외엔 찾아보는것 자체를 잘 못해서 놓치고 2016년에 겨우 세 번 봤다. 총합 자넷인데 이건 연뮤덕 기준으로는 쓸못사만 겨우 면했다 뿐이지 그냥 햇병아리 쓸알못임. 즉 이하의 후기는 알못주의. 



'그'가 '나'보다 우월한 건 두 가지. 첫째는 한마디로 superior한 외형. (보통) '나'보다 큰 키와 큰 덩치, 잘생긴 외모. 둘째는 '그'는 '나'가 '그'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반면 '나'는 '그'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 



내가 이제까지 본 쓰릴미의 '그'는 이 두 가지 우월한 자원을 사용하는 데 있어 다소 무미건조했다. '그'가 '나'를 움직이기 위해 굳이 먼저 매력을 어필하거나 감정에 호소하지 않는 모습에서 알 수 있음. '그'가 계약서를 꺼내들기 전에 "아니, 난 네가 없으면 다~망쳐버릴 거야"라고 표정 변화 없이(혹은 오히려 웃으면서) 느긋하게 이야기한다든가 "'나'는 뛰어난 인간"에서 "'우리'는 뛰어난 인간"으로 주어만 슬쩍 바꾸어 말한다든가 하는 건 자신의 제안에 '나'가 자석에 철가루 붙듯 끌려오리라는 걸 내다보고 하는 이야기이며, 계약서를 자신이 주는(정확히는 하사하는) '선물'이라고 칭하면서 어때, 거절 못하겠지? 겁나좋지? 라고 묻는 듯한 표정을 짓는 모습들도 그렇다. 



하지만 정동화의 '그'는 다른 배우들의 '그'에 비해 감정적인 부분을 적극적으로 이용해서 '나'를 쥐고 흔들려고 듦. 같은 대사지만 "네가 없으면 다 망쳐버릴 거야"라고 말하면서 '정말 망할거다, 그렇게 되면 나 좀 슬플 듯ㅇㅇ'이라는 듯한 시무룩한 어투를 사용한다거나 키스, 손깍지 등 스킨십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든가 하는 부분들, 비교적 웃는 표정이 풍부하다는 점(다른 '그'들은 내안경이나 어프레이드 이전까지는 큰 표정변화가 없다) 등에서 그런 인상을 많이 받았다. 이런 분류는 그다지 좋지 않다고 생각되지만, 원래의 '그'가 상명하달식으로 '나'를 지배하는 모습이 군대식 즉 전통적인 남성성에 기반하는 느낌이었다면 이 '그'는 소위 여성성에 포함된다고 일컬어지는 행동을 많이 함. 그래서 첫인상은 공주나 여왕 같은 왕족 여자 같았음. 이게 되게 새롭고 재밌었어서 이 새벽에 이 긴 후기글을 쓰고 있다.



인터뷰 참고하려고 퍼온 사진인데 잘생겨서 계속 들여다봄. 사실 내 감정도 쥐고 흔드셨고요.



왜 이런 해석이 나올까, 단순히 생각하면 '나'들보다 몸집이 작기 때문에(...) '나'를 지배하는 데 있어 감정적인 부분까지 동원해야했던 것일수도 있겠지만 인터뷰에서는 의외로 '아버지에 대한 사랑의 결핍'을 이야기하고 있네. 배우의 이런 해석이 영향을 미쳤을 거라 생각함.




이런 '그'를 만났을 때 강영석의 '나'는 상대적으로 강해지는 경향이 보였음.



쓰릴미라는 극의 스토리 중후반까지 '나'가 '그'에게 끌려다니다가 마지막에야 그것도 몰래 반전을 꾀하는 것은 권력구도에서 열세이기 때문인데, 그 권력이란 게 위에서도 내가 한번 썼고 이 인터뷰에서 본인이 말하고 있듯이 '(수페리어한)외형적으로 위압적인 느낌'이 본페어인 임병근의 '그' 및 다른 '그'들의 권력의 주된 원천임. 반면에 정동화의 '그'는 감정과 스킨십을 주로 내세우고 있는데 스토리 진행상 당연하지만 여기 많이 휘둘려줌. '그'의 키스나 이런 것들에 약간 어안이 벙벙한 느낌이긴 함.



 

이건 딱히 인터뷰에서는 인용할 부분이 없지만 위 사진과 온도차가 너무 좋아서 가져옴 ㅋㅋ

 

강배우가 출연한 모범생들-총각네야채가게-쓰릴미까지 챙겨봤는데, 모범생들 2학기때 1달동안 잠깐 한 김명준을 제외하고 전부 부잣집 아들내미(인데 성격 좀 이상한) 역할이다. (차기작인 마돈크에서도 비슷한 신분(?)의 역할을 맡을 예정) '나'도 마찬가지로 귀족 연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데, 상대인 정동화의 '그'가 일단 감정도 숨기지 않아서 좀 철까지 안 든 왕족 연기를 하고 있어서 ㅋㅋㅋㅋㅋ 정신차려보니 이미 열세. 마음에 안 들고 평생 이런 허드렛일 해본적도 없지만 선천적 신분차+좋아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꾸역꾸역 집사 노릇을 하는 거 같아서 솔직히 너무 재밌었다.ㅋㅋㅋㅋ 이전에 본 본페어에서 '그'는 살인을 계획할 때 '얼굴에 염산을 뿌려버리면 돼. 그러면 안 들켜'라는 식으로 구체적인 실안을 제시한다면 이번의 '그'는 '염산을 얼굴에 뿌려버리면 되겠지? 너무 신난다' 이러고 있으니 한숨 푹쉬면서 '그거는 이러이러해서 안돼~ 우리 친구 알겠죠~' 하는 달램+가르침의 어투로 말해서 극 보는 내내 이전과는 다른 의미로 '네이슨이 고생이 많다'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근데 둘다 귀여워서 광대는 승천해있었음. 무튼 '나'의 이런 부분들은 첨이었다. 매번 '그'에게 끌려다니는 느낌이었다면 '아 그래 저 철없는 인간이 하자고 하니까 내버려 두면 지 혼자서라도 하다가 뒷처리 못해서 망하겠지 내가 해줘야겠지 이놈의 팔자야' 라고 온몸이 말해 ㅋㅋㅋㅋㅋ 


근데 사실 교도소에서 심의를 할때 내내 웃지도 울지도 반성하지도 않는 표정으로 오히려 가끔씩 죽일 듯이 심의관들을 노려보는 표정을 보면 이날의 '나'는 원래 '그'와 다를 바 없이 자존심 빼면 시체인 귀족에 싸패였다. 그런데 적성에 안맞는 집사노릇을 하고 있자니 계속 '아 ㅅㅂ 이게 아닌데' '아 ㅅㅂ 저새기 또 뭐라는 거냐 미치겠네'같은 표정이 나올밖에... 그래서 결국에는 못 참고 일부러 안경을 떨어뜨리고 오는 걸로 쿠데타를 일으켜서 왕권을 탈취한 걸로 보였음. 그래서 난 너보다 뛰어난 인간이야, 라고 말하는 거 너무 의미심장했고요. 


'그'에게 '따른다'기보다 '돌봐주는' 느낌에다, 그게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자 뒤엎어버리는 모습들이 원래 내가 생각했던 '나'의 수동적인 모습을 지우고 적극적이고 소위 '남성적'으로 불리는 모습을 상대적으로 부각시키는 것 같았다. 


'그'가 이런 '나'에게 대응하는 모습은 극과 극임. 평상시엔 해맑게 웃으면서 범죄를 저지르고 돌아다니면서 집사에게도 온순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가 권력체계에 순응하면서 뒷처리라는 자기 임무를 잘 했을 때 얘기고, 이걸 제대로 못하자 체계를 위협한다 생각했는지 돌변함. 다른 '그'들이 '나'를 그냥 집어던지는 데 비해 이 '그'는 뺨까지 (열라 세게) 때리는데, 뺨을 때리는 건 보통 (자존심에 대한) 모욕을 주기 위함이다. 나보다 낮은 니 위치 똑바로 알아라, 라는 메세지 같았음.

 

조금 아쉬웠던 건, 이런 파워게임 구조로 가다 보니까 배우 간 케미는 좀 덜 살았던 거 같다. 초반까지는 분명히 등장인물 둘이 서로 엄청 좋아하네 싶었는데 후반부에서 또 알쏭달쏭해짐. 특히 커튼콜에서 둘이 합이 안맞아서 어색했음.ㅋㅋㅋㅋ 나는 항상 '그'의 정확한 속내가 어땠는지 잘 모르겠다. 정말 '나'를 사랑했는지. 뭐 그게 공연하는 그날그날 달라지고, 결국엔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게 이 극의 매력이긴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