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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리뷰_문화생활/뮤지컬

[뮤지컬] 160720 위키드

 

 

 

 

 

 

 

 

160720 위키드

 

엘파바_차지연

글린다_정선아

피에로_고은성

오즈_남경주

모리블_김영주

 

 

 

 

동화를 보면 왜 눈물이 날까? 특히 어른이 더 그렇다. Disney is for adult라는 말은 왜 있는거냐고. 애들은 동화를 보며 행복해하는데 어른은 질질 짠다. 덕후 어른은 더 짠다.

 

2년 만에 위키드를 다시 봤다. 여전히 대극장 뮤지컬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희망차고 예쁘고 유쾌하다. 아름다운 무대세트와 의상, 멋진 화음과 안무, 원하는 것을 거머쥐는 결말을 위한 모든 갈등과 서사적 장치들. 이것들이 전부 주인공을 위해 존재하고 그 주인공은 여자다. 심지어 예쁘지도 않은.

 

이 이야기를 보는 당신이 원하는 건 무엇이든 하면 결국엔 이루어진다, 그러니 희망해도 괜찮다 라고 동화는 너무나 당연히 이야기한다. 이게 삶에 찌든 어른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부분이다. 뭐든지 뜻대로 되는 법이 없고 애써 뭐좀 하려 치면 돈과 시간 둘 중 하나는 모자라거나 주변 오지라퍼들이 셀프지랄해주는 인생을 살아온 어른은 동화가 주는 희망적인 메시지에 감동해버린다. 꼰대같지만, 애들은 맨날 보는 게 이런 거니 무뎌져 있을 법도 하다. 보고 겪는 대부분의 이야기가 해피엔딩이지. 철모르고 꿈꾸는 것만이 일상이었고 허락되었던 시절, 아아 어린 시절이여. (요즘은 유치원 때부터 입시경쟁이라고 하니 그렇게 해맑게 뭐든 이루어질거라 믿을 수 있는 기간이 훨씬 단축되고 있지만 말이다) 

 

여자여도, 근데 공주가 아니어도, 피부가 초록이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이어트도 화이트 태닝도 성형도 안하고 꾸밀 줄도 몰라도 주인공일 수 있으며, 의무교육과정 때려치고 가출해서 동물 보호 운동가가 되어도, 나쁜 사람을 나쁜 사람이라 칭하고 돌아다녀도, 왕자 대신 허수아비를 택해도 어 그렇구나 잘했구나 하는 세상. 그게 돼? 라는 물음에 어, 그게 돼. 라고 단번에 대답하는 세상이 위키드가 만드는 동화 속에는 있다. 동화의 안과 밖의 괴리가 심할수록 어른은 동화를 보면 눈물이 줄줄 난다. 시각적으로 예쁘기도 하지만, 여성들이 남성보다 (특히 최근의 페미니즘 성향을 띤) 동화들에 더 감동하는 이유가 여기 있지 않을까. 시발 된대 엉엉.

 

위키드가 주는 메시지의 상징은 엘파바지만, 글린다 역시 기존의 젠더 편견을 뒤엎는 인물이다. '여성스럽게' 치장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으며 결국 그를 통해 히어로의 트로피와이프라는 '명예'를 쟁취하려는 여자. 금발의 글래머 미인으로 대표되는 이 편견을 깨부수고자 오히려 '그러지 말아야 한다'라며 강박적으로 역코르셋을 조이는 현대 여성들에게 글린다는 말한다. 그냥...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조크든요. 샤방샤방. 공주님 드레스건 미니스커트건 애인이 있건 없건 난 내가 입고 싶은 걸 입는다. 엘파바가 까만 드레스를 입고 허수아비 왕자를 선택했듯이. 내 전공은 파퓰러이되 남자뿐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파퓰러한 것이 목표이다. 글린다는 엘파바에게서 마법책을 넘겨받고 실력을 갖춘 진짜 마녀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본인의 보석왕관을 내던지거나 버블드레스를 찢거나 '이제 남자따위 필요없어!' 라고 외치지 않는다. 이렇게 입고 열심히 연애하는(혹은 할) 금발미녀도 머리 텅텅이 아니랍니다. 정말 놀랍죠? 사실 나는 정말 놀랍다. 2년이나 돼서 결말 다 잊어버리고 있었거든(...) 주인공으로 직접 몸으로 부딪혀가면서 격한 갈등상황을 표현하는 엘파바 뒤에, 있는 그대로의 '예쁘고 화려한' 자신을 여전히 사랑하는 글린다 역시 시사하는 바가 컸다.

 

추가로 2막에 좀 재밌었던 점은 피에로를 사이에 두고 흔한 치정싸움으로 번지는 듯했던 엘파바와 글린다의 급화해장면이었다. 평소에 많이 보던 여성멸시적 드라마였다면 누구 하나 죽을 때까지 싸우거나 결말까지 싸우거나 둘 중 하나였을 텐데 그냥 화해해버림. ㅋㅋㅋㅋ 솔직히 연출 면에서는 스토리 구멍같았는데 속시원했던게 ㅋㅋㅋ 이거 그거 아니냐? 남자들이 지들끼리 여자 하나 두고 신경전 벌이다가 결국 같잖은 주먹다짐 한번 하고서 "후... 그램마 너한테 양보한담마" 어쩌구 하면서 소주한잔 하고 털어버리는거. ㅋㅋㅋㅋㅋㅋ 이거 그건데?ㅋㅋㅋㅋㅋㅋ 미러링임?ㅋㅋㅋㅋㅋ 

 

여성 2인이 투톱으로 나서서 산전수전 겪다가 결국 자기들 힘으로 성공한다는 스토리의 만화나 영화-아가씨, 도리를 찾아서(얜 심지어 원톱이네), 겨울왕국, 위키드-들은 '여자도 할 수 있다'는 상징성이 보여서 좋긴 하지만 앞으로는 그 상징성이라는 게 닳아 없어졌으면 좋겠다. 아직 너무 많은 재벌 3세가 가난한 초미녀 여자를 구해준 뒤에 CF를 찍어 몇십억씩 벌고 있다고. 그러다가 여자들이 톱으로 출연하는 작품이 하나둘쯤 나오면 단번에 주목이 되고 페미니즘의 발전이고 하는 세상인데...  앞으로 그냥 이런 작품 너무 많아지고 차고 넘쳐져서 여자가 오천오백명 나와도 그냥 그런가보다 하는 세상 왔으면 좋겠다. 위키드가 아무것도 상징할 수 없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