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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리뷰_문화생활/책과 영화 그리고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13-07-01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지금, 당신은 어느 역에 서 있습니까?모든 것이 완벽했던 스무 ...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상실의 시대(노르웨이의 숲)의 성장판이라는 광고문구를 보고 나서 읽어서 그런가. '과연 그렇군' 이라는 느낌이다.

정신병에 걸린 등장인물이라든가. '상실'을 주제로 이끌어가는 글의 전개라든가. 많이 닮아 있다. 다만 '다자키 쓰쿠루...'가 좀더 흥미롭다고 느껴졌는데, 미스테리한 요소를 끌어들인 결과가 아닌가 생각된다. 상실의 시대가 담담하게 주인공의 젊은 시절을 당시의 시점에서 풀어나간다면, 다자키 쓰쿠루는 중년 남성의 여유로운 일상에 남아있는 상흔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과정이다. 다만 그 상흔이 생긴 원인을 찾아가다가 '시로(유즈)'의 살해라는 사건이 끼어들면서, 약간 추리소설의 느낌이 나는데 오히려 그것 때문에 책을 놓지 못하게 된다. (사실 상실의 시대는 지루해서 별로 안 좋아함;)

다독하는 편은 아니지만, 어쩐지 일본 문학 특유의 문체에서는 알 수 없는 '맥빠짐'이 느껴진다. 너무 담담하고 무난해서 그럴까. 그런데 다자키 쓰쿠루에게서는 어떤 절박함이 느껴진다. 깊은 상처와 상실감이 절절하다. 한국 소설만큼은 감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어렸을 적의 상처를 현재의 연인도 느낄 만큼 존재감이 있다. 실제 다자키 쓰쿠루는 상처 이후 외모에서도 아주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다. 친구들의 일방적인 절연의 원인을 찾아야만 하겠다는 그런 필요성을 이해할 만했다. 이대로는 답답해서 못살겠다 그거 아냐

다자키 쓰쿠루는 무난하고 평범하다는 자신의 설명과는 달리 실제는 그 반대인데, 타인들은 그를 잘생긴 부잣집 도련님으로 표현하며, 어릴 때 친구 중 한 명은 그를 짝사랑까지 했었다. 그리고 그의 내면에는 무난하지 않은 깊이의 상처가 있다. 그리고 그의 무난하지 않은 절박함은 그의 연인인 '사라'에 대하여도 나타난다. 구로는 쓰쿠루에게 그 여자를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녀를 놓친다면 다시는 누구도 가질 수 없게 될 거라고.

사실 내면의 상처 같은 거야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고, 그런 상처가 있어도 잘 살아가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은 법이다. 쓰쿠루는 친구들을 잃고, 대학교의 유일한 동료인 하이다를 잃고도 다시 사라라는 연인을 만나 즐거운 연애를 하지만, 마음 속에서는 생선가시가 걸린 것처럼 상처가 거치적거린다.

사라에게 간절히 '당신을 원한다' 라고 하는 장면은 영화 상실의 시대에서의 마지막 장면-즉 주인공이 미도리에게 너를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것과 비슷하다. 사라와 미도리는 상실하지 않은 현재의 상대. 지나간 상처를 극복하고 현재의 상대에게 충실하려는 내용은 하루키 작품뿐 아니라 많은 일본 소설에서 느끼는 결말(혹은 주제)이다. 이 사람에게서 얻은 상처를 다른 사람으로 잊는 것은 보통의 생존 방식이다. 다만 그 평범한 주제를 어떻게 풀어가느냐가 소설가의 숙제인 것 같다.

쓰쿠루는 다시 사라마저 잃게 될까? 만일 사라를 잃게 되면 그는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그리고 하이다는? 왜 하이다에 대한 상실의 내용은 다루지 않은 건지 좀 의문이 남긴 하다. 그 부분에 있어서는 (의도되지 않은)미완이라는 느낌마저 받는다. 그 부분 어쨌죠

한편 하루키의 작품에서 매번 나오는 섹스에 관한 내용은 여전히 중요한 내용이긴 하다. 그래도 많이 줄고 있다.....그런 것 같다.ㅋㅋㅋㅋ 하루키도 나이를 먹어서 그런 건지, 주인공이 나이를 먹어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삶에서 그런 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 이정도가 된 느낌이다. 그러나 많은 걸 암시하긴 해 안해도 되는 건 아니고 그런 느낌

 

한마디로 재미있냐 없냐를 묻는다면, 재밌다. 상실의 시대와 비교해서 말하라면, 훨씬 재밌다. 친구들을 찾아가는 과정이 분산되어 긴 집중력을 요하지 않고, 작품 자체도 길지 않아서(사실 이건 매우 중요하다. 전공책 외에는 두꺼운 책 읽고 싶지 않다고....) 짧은 시간 내에 독파도 충분히 가능. 그런데 이 책을 왜 줄을 서서 샀을까 싶다. 그 정도의 열정을 쏟아서 살 만한 책 같지는 않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