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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리뷰_문화생활/책과 영화 그리고

윤지운-안티 레이디 7권 : 상도덕이라는 이름의 법정

 글 두서 없음. 논리 없음. 글쓴이 졸림.

 

 

 

 

...아니 왜 책소개가 들어가질 않는 거야.

 

여하튼, 주인공 정이원 씨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독자의 권한으로 박효빈 그년을 상도덕이라는 이름의 법정에 피고로 세우는 바다.

전적으로 정이원 씨의 입장에서 박효빈 네이년 양을 공격할 테다.

 

1.

 

효빈이 하는 말은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사무실이 더러운 것도 근무시간에 통화하는 것도 안 될 일이고 그건 전부 이원의 책임. 누가 말하든 간에 잘못된 건 잘못된 일이고, 어딘가 한명쯤 쓴소리를 해줄 사람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쓴소리의 태도란 것이 항상 문제되는 것이지. 누군가는 그걸 알맹이를 둘러싼 껍질에 불과하다고 까내릴 지 모르지만 그 알맹이가 말이야 대부분 물러터졌으니 껍질이 필요한 것이다. 알맹이는 사람의 물러터진 마음(자존감)이고 그 충격을 완충해주는 껍질이 예의라는 거다. 예의. 이년아.

 

쓴소리를 하기로 마음먹는 계기는 다양하다. 그냥 내 눈에 안좋아 보이니까, 혹은 김눈치 씨가 걱정되니까, 혹은 지나친 오지랖으로 그 사무실의 미래가 진심으로 걱정이 된다거나. 이걸 1, 2, 3으로 번호를 매겼을 때 효빈의 의도는 아무리 봐도 1이 70퍼센트 2가 30퍼센트.(3 따위....) 정말 이걸 그냥 진실을 말한 걸로 되는 거야? 안에 든 게 황금이기만 하면 백만볼트 전기줄로 둘둘 감아서 스매싱 해줘도 상관이 없냐구. 어머, 집히는 대로 포장하다 보니 전깃줄이네 어머머 호호호 이게 아니잖아. 적어도 어느 정도 나이를 먹은 사회인이라면, 상대방의 기분을 생각하면서 말할 줄 알아야 하는 거 아닌가. 백 번 양보해서, 기분 나빴다면 미안해요. 이 정도는 말할 줄 알아야 소시오패스 면하는 거 아냐?;

 

게다가 여자친구 있는 남자에게 고백이라. 이거 말이다. 그냥 고백으로 끝나면 안되겠느냐 하는 정도에 있어서도 엄청난 논쟁이 벌어지는 일인데, 그건 짝사랑하는 본인이 짊어지고 가야 될 맘고생 팔자라는 것이 내 입장이다. 고백뿐인데 뭐 어떻냐고 하겠지만 전술한 바와 같이 사람의 알맹이란 보통 물러터진 게 아니고, 그것보다 더 오늘 내일이 깜깜한 게 그런 물러터지고 유들유들한 마음들로 이어진 관계라는 것이다. 단언컨대 가장 완벽한 물질은 없다(....). 그러하다. 완벽하게 단단한, 어떤 걸로도 절대 깨지지 않는 그런 건 없단 말이다. 사람의 관계에 영원이란 게 없듯이, 어느 한 찰나에도 구멍 하나 없는 견고한 이어짐이라는 건 존재할 수 없다는 게 지론이다.

 

어떤 막장드라마에 꽤 쓸만한 대사가 나온 적이 있어서 기억하고 있는데, '부부관계를 가장 잘 갉아먹는 건 의심'이라고.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빠르게 자라나서 숙주를 파먹는 그 의심. 순두부처럼 몽글몽글한 사람의 마음이 설령 찰나에 변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상대방의 마음에는 충분히 의심이라는 게 자리잡을 수 있다. 그 계기를 만드는 게 다른 여자가 내 남자에게 고백을 했다, 그 단순한 사실인 것이고. (와 내 남친한테 고백했다 상상하니 진짜 빡치네 여봐라 저년을 매우 쳐라!!!)

 

실제 이원이 비뚤게 구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쏘쿨병 말기의 염세주의자라 하더라도 내 연애에 좁쌀만한 불안함이라도 곁들여지면 견딜 수 없는 법이다. 계속 말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그런 거다. 단순히 팩트를 말했을 뿐이야, 단순히 내 감정을 전했을 뿐이야, 그걸로 무마되는 일이 아닌 것이다. 말로 갚을 수 있는 것은 말뿐이다. 말로 마음을 되갚을 수는 없다. 기억하지 말아 줘요, 어쩌지. 이미 깊숙히 새겨 놨는데.

 

자 이제, 김눈치 씨는 어쩔 것인지? 지금까지는 상당히 여성 판타지를 충족시키는 순정만화 남주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셨으나, 이원의 태도에는 정말 화가 난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무조건 정이원 씨의 편이 되어 줘야 한다는 거, 그 여자가 바라는 걸 당장 캐치해내지 못한다면 이 연애는 폭풍 속의 조각배 신세가 될 것 같다는 거.

 

 

 

 

2.

막역한(그렇다고 느끼는) 친구의 정치사상이 더 이상 못 참을 지경에 이르렀다. 보수, 좋다 이거다. 근데 이 상황에 빨갱이 쓸어버려라 국정원 화이팅 이거는 좀 아니지 않아? 하여간에 1베(필터링 작렬ㅋㅋㅋ)와 존심 센 '정통'보수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이 친구와의 관계를 어쩔 것인지 딜레마에 빠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냥 연락 끊어? 아니, 언젠가는 '쓸모있을 지도 모르니까' 계속 가면쓰고 좋은 척 만나? 아직 학생이잖아? 내 우유부단한 성격은 후자로 결론 내렸고, 언제 한번 보자 하하하 하며 그 '언제'를 한없이 미루는 관계를 이어나가는 중이다.

 

그래서 미안하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 그 녀석은 나와 지낸 오래된 세월 외에는 신뢰감을 받을 만한 요인이 그다지 없고, 결국 나는 이 녀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근데 그 애, 꽤 괜찮게 생긴 데다 집안 경제사정도 인서울 사립대 등록금 내면서 자취할 정도는 되는 모양이다.(속내야 모르지만.) 배경이 그러하나, 녀석을 만나는 여성분들은 녀석에게 오랫동안 머무르지 않았는데, 어쩐지 친구 입장에서도 여친들의 입장을 이해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왜인가.

 

처음에 뭐에 끌렸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사람 처음 보면 보이는 것은 얼굴과 키, 몸매, 그리고 물어볼 만한 것은(특히 우리나라에선) 학교, 회사, 집안 얘기가 전부이니 말이다. 중요한 건 왜 계속 관계를 이어나가는지 그거 아닌가. 

 

'눈부시도록'에서 문유채가 말했듯, 사람 관계를 꼭 좋자고 유지하는 것은 아니다. 쓸모 있을 것 같아서 라는 딱딱한 이유를 완화해서 말하자면, 딱히 적을 두고 살지 않는 것이 신상(?)에 이롭기 때문이다. 그거 나쁘다는 것 아니다. 그 점에서는 효빈의 이야기가 틀린 건 아니지.

 

그런데 말입니다.(feat.박상중) 효빈의 말은 어딘가 좀 찜찜한 데가 있다. 극단적이라는 거다.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게 좋고, 웃는 게 좋고, 뭐 그 정도의 애정이라면 충분하다는 건가. 그게 그녀가 정의하는 사랑인가 말이다. 안 보이면 죽을 거 같고 집착하고 싶고, 그런건 사랑이 아니고 막장 드라마인가? 그걸 왜 이원은 또 부정하지 않지? 그리고 나의 애정은 이렇다, 라고 정의하면 그건 그대로 끝인 건가. 여친 앞에서 남친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지 말이다. 효빈과 이원의 말은 애정이라는 본질을 두고 대립한다. 어쩐지 본질과 겉도는 느낌이 없지 않지만, 두 여자는 나름 정의를 내리고 그걸 지키려 든다. 존중은 취향해야 마땅하지만, 그놈의 말뽄새 때문에 효빈의 손은 절대 들어줄 수 없겠다. 

 

사람들은 저마다 갖고 있는 알맹이가 너무나 약해빠졌다는 것을 오래 전에 깨달았고 각각의 단체마다 상도덕이라는 겉치레를 차려 그 알맹이를 보호해주자고 약속했다. 그런데 요새 자꾸, 그 약속을 비껴가 삐딱하게 앉아서 비웃는 것이 소위 '쿨하다'라는 것의 전부인 줄 아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저기 있잖아요, 내가 꼰대 같아보일 수도 있지만 그거, 그거 아닌데. 당신 속의 그것도 뭉글뭉글 하잖아. 아닌가요.

 

 

 

 

 

3. 여튼 질풍노도의 7권은 처음으로 눈부시도록 보다 더 인상이 깊었다. 우리가 생각하던 상도덕이 과연 모두의 상도덕인가 하는 점을 찔린 거 같아서 매 순간 마음이 쿵 쿵 떨어졌다. 하지만 저는 꼰대인 관계로(...) 기존의 상도덕을 필사적으로 보호하려 애쓸 생각이다.

 

누군가 박효빈을 후드려패주지 않는 한, 나는 당분간 강희안군으로 계속 힐링하고 있겠다. 아이러니하게도, 강희안은 윤지운 작가의 작품 중 두번째로 답답한 인간(1등은 황혜민)인데, 나도 여자인 걸 어떡하나. 그 부드러운 미소만 보면 이 폭발하는 모성애를 어쩌냐고. 희안아....끙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