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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리뷰_문화생활/책과 영화 그리고

[전시]무라카미 다카시의 수퍼플랫 원더랜드

2013년 가을학기 레포트 제출했던 내용. 팔아도 되지 않냐고? 이 레포트 내고 (레포트 때문인지는 모른다 비중이 적었으니까)이 과목 C+받았다.

 

 

 

 

 

서론

 

삼성 플라토 미술관에서 7월부터 열렸던 무라카미 다카시의 전시회에 다녀왔다. 다른 참고도서의 서평을 쓰는 대신 전시회를 택했던 것은 그가 소위 오타쿠문화를 예술의 한 분야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듣는 이유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전시회 내부는 소박했고 작품의 수가 많지 않았던 것에 대하여 동행인은 물론 나 역시 아쉬운 느낌이 들었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다카시가 추구하는 슈퍼플랫의 의미에 대하여 조사하는 계기가 되었다.

 

본론

 

1.   코스프레에 대하여

 

예쁘고 육감적인 모습에서 전위적인 형태로 변신하는 미스 코코시리즈 및 코스프레 사진 시리즈는 물론 아니메나 일본 젊은 층의 문화를 경험한 바 있는 나로서는 가와이하다는 것을 분명 느낄 수 있었다. ‘가와이를 개인적으로 어떤 미()의 종류라고 느끼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타자화된 미의식의 한 종류로서-즉 누군가는(주로 오타쿠들이) 그것에 대한 시각적 자극을 통해 쾌감을 얻을 수 있다-다카시의 사진들이 그 가와이에 속한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미의식을 어떻게 타인들, 즉 좁게는 비()오타쿠들에서부터 넓게는 전세계의 모든 외국인들에게 예술로서 어필할 수 있을지 작가 자신의 고민이 많았던 것 같았다. 일단 코스프레 사진들과 일련의 피겨들을 보더라도, 평소에 캐릭터 상품 가게에서 보아 오던 일본의 피겨, 그리고 아니메 오타쿠들이 하는 코스프레와의 차이점을 크게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전시실 입구에 있는 미스 코코의 변신과정을 형상화한 피겨 작품을 보면 어떤 메시지 전달 의도가 (비록 난해하긴 하나)느껴지지만 전시실 내부의 작품들의 전달력은 미미했다.

자료를 찾아보더라도, 미스 코코 시리즈에 대한 해석은 많지만 피겨와 사진들에 대한 설명은 그리 많지 않았다. 돌이켜 생각건대, 첫 번째 전시 구역에 다카시가 부여하는 의미는 자신이 추구하는 슈퍼플랫 개념의 시발점이었다. 그의 원더랜드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그의 영감에 기초가 되었던 자료들이 POKU, 즉 오타쿠 문화를 수용한 작품 세계를 구성하는 원석(혹은 반석)의 형태로 남아 있었다. 앤디 워홀 역시 코카콜라 병이라는 미국을 상징하는 브랜드를 이용하고 그 형태를 나열하는 방식을 통해 네오 팝을 대표하는 작품을 제작했다. 당시의 미국인이 보기엔 슈퍼마켓에서 바로 사올 수 있는 물건을 단순 진열해 놓은 모양새가 처음부터 작품이라 칭하기 어색했을 것이다. 가까운 일본의 문화를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에서 자란 내가 일본 하위문화를 예술이라 지칭하는 자리에 있을 때, 마치 코카콜라 병을 작품으로 세워놓은 것을 보고 공감하지 못하는 미국인과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것이다. 또한 서양 아티스트가 대부분인 네오 팝 장르에서 일본인이 일본만의 대중 문화를 전면에 날것으로 내세우는 모습은 관련 학계에서도 인상 깊었으리라 생각된다. 특히 코스프레 사진들은 모델이 전부 일본인이라 더욱 의도적으로 느껴졌다. 그런 점에서 다카시의 미스 코코를 비롯한 사진과 피겨 전시는 첫인상과는 달리 전시 전체의 의미부여에 중요한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장르상의 작가와 일본의 입지에 있어서도 선언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된다.

 

2.   애니메이션

 

사실 이번 다카시전의 중심 전시는 애니메이션을 비롯한 영상물이 아닐까 생각한다. 세 섹션으로 나뉜 전시관 안에는 크게 미스 코코 시리즈를 비롯한 코스프레 사진을 전시한 부분과 미술작품 및 설치작품을 전시한 부분으로 나뉘어 있고 가운데에 영상실이 있었는데, 사실 다른 전시보다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관람비용과 비교한다면 나쁘지 않았지만 적은 작품 수 때문에 첫인상이 좋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었다. 영상실에 들어가 편히 앉아서 작품을 관람하다 보면 전시가 부실하다는 느낌을 쉽게 덜 수 있다. 영상실에서는 3~5분 정도의 짧은 작품과 CF등을 10편 남짓 상영한다. 다소 긴 시간 동안 영상을 봐야 하지만 편히 앉을 수 있고 영상 한 개의 길이가 길지 않아 지루하지 않았다.

이미 많이 알려진 루이비통 홍보 영상부터 시작하여 카이카이와 키키의 모험, 보컬로이드 하츠네 미쿠의 뮤직 비디오에 이르기까지 그의 영상이 쓰이는 분야는 다양하지만 그 속에서 그의 색깔은 확실해 보였다. 영화 썸머워즈의 가상세계를 떠올리게 하는 그의 원더랜드는 정교한 작업을 통해 자연스럽고 섬세한 움직임을 나타내는데, 그것이 물체의 움직임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려는 노력이 엿보이는 동시에 그 정교함이 디지털적으로 느껴진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커다랗고 원색의 무늬가 있는 괴물들이 끊임없이 주인공들을 삼키고 뱉어내며, 주인공들은 마치 무중력 공간이나 물 속을 다니는 것처럼 공중에 떠서 빠른 속도로 날아다닌다. 다카시의 일련의 영상 작품을 보고 있자면 광활한 우주나 깊은 바다에 떨어진 듯한 느낌이 든다. 방대하고 정교하여 감탄하지만, 어딘가 압도되는 느낌이 든다. 그의 캐릭터가 깜찍하지만 가끔 무서운 느낌이 드는 것도 그런 이유일지 모른다.

그의 작품에는 화려한 배경에 가와이한 캐릭터들이 다수 등장한다. 그런데 항상 웃고 있는 캐릭터들에게서 어딘가 기괴한 점이 느껴진다. 어딘가 모자란 듯한 모습이 귀여운 키키는 눈이 세 개(비슷하게 생긴 다른 캐릭터들은 눈이 더 많아진다), 반대로 야무지고 차분한 카이카이는 전투기를 몰고 괴물과 싸우는 데 익숙하며 전쟁을 겪은 아픔을 갖고 있는 캐릭터이다. ‘스이카(수박)’라는 짧은 영상을 보면 카이카이와 키키는 영락없이 텔레토비뽀로로같은 아동용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이다. 그러나 그 다음에 이어지는, 도심에 나타난 괴물과의 전투 신을 보면 내용은 좀 더 심각해진다. 카이카이 키키는 가와이한 외형을 띠고 있으나 실제 작가의 내면을 표현하는 데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다카시의 작품은 하나같이 밝고 우스우며 오로지 일본 하위문화 소비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듯한 느낌을 주었다. 솔직히 지금까지의 일본 아니메와 다카시의 그것이 다른 점이 무엇인가 하는 특징은 영상실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웠다. 다만 코스프레 전시실과 마찬가지로, 그의 영감의 원천을 날 것 그대로 드러내며, 결국 루이비통과 슈에무라[1]와의 콜라보를 통해 그러한 그의 의지가 세계적인 브랜드의 소비자들의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자리였음을 짐작할 따름이었다.

 

3.   미술 작품들

 

개인적인 기호지만, 영상이나 사진보다 미술 작품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미술 작품들을 볼 때 비로소 장르의 정체성이 명확히 드러난다고 느꼈다. 영상실의 애니메이션과 CF들이 오타쿠나 일본 문화에 관심 있는 일부 소비자들을 위한 듯한 느낌이었다면 미술 작품들은 그 정교함만으로도 압도적이었다. 아크릴과 금박이 주 소재로 사용된 작품들은 그 크기와 기법 면에서 작가의 열정을 충분히 느끼게 해주었다. 굉장히 섬세하고, 그러면서도 방대한 규모의 작품들은, 비록 실제 다카시가 강연에서 스태프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솔직히 표현하긴 했지만, 굉장한 정신력을 필요로 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면서 들었던 생각은, 어떤 분야에 몰입하는 사람을 두고 칭하는 말이 오타쿠인데, 하나의 작품을 위한 노력에 있어서 오타쿠와 일반 아티스트를 구별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작품에 몰입하여 귀를 잘랐던 고흐나 평생을 천정 벽화를 그리다 등이 휘었다는 비화가 있는 미켈란젤로 등 하나에 열중하는 상태를 오타쿠라고 낮추어 부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오타쿠라는 단어 안에 있는 비하의 의미를 곱씹어보게 되었다. 과연 다카시 정도로 미학 분야에서 높이 평가될 만한 작품을 만들어야 오타쿠라는 이미지를 재고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결론

 

다카시의 슈퍼플랫 원더랜드는 기대 이상이었다. 수업 시간 중 진행되었던 발표의 내용에 따르면 일본에서의 오타쿠는 우리나라에서의 이미지보다 좀 더 부정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다카시의 원더랜드는 훨씬 긍정적이고 밝으며, 프로페셔널의 느낌이 들 정도로 섬세하였다. 처음에 오타쿠의 문화를 예술의 영역으로 재창조했다고 볼 수 있을 만큼으로 끌고 간 것인지, 아니면 어떤 현대미술가가 그의 작품의 독특성을 인위적으로 창조하기 위하여 오타쿠 문화에 속한다고 칭해지는 것들을 차용했을 뿐인지 헷갈렸던 것도 작품들의 높은 완성도 때문이었다. 무라카미 다카시의 작품들은 네오 팝을 좀 더 서브컬처의 영역과 동일시 하는 동시에 POKU의 새로운 장르로서의 지속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더불어, 현대 일본을 통과하는 미학 코드인 가와이의 확실한 대명사화-, 일본의 대중적인 미의식의 분명한 영역을 규정짓는 역할도 같이하고 있었다.

서양 예술의 잣대로 평가되던 기존의 예술에 새로운 지평

다만, POKU와 무라카미 다카시의 명성은 가와이오타쿠의 문화를 POKU 그 자체로 동일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일요일 아침에 방문한 전시관에는 가족 단위의 손님들로 붐볐다. 성인과 소인을 전부 관람객으로 입장시키고 있었으나, 일부 작품의 선정성을 고려하여 15세 정도로 입장 연령을 제한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메라든지 오타쿠, 캐릭터 등의 단어를 사용한 개괄적인 수준에 그친 전시 설명은 아동이 관람하기에도 적합할 것이라는 오해를 불러오기 쉬웠다. 중고등학생도 아닌 5세에서 10세 전후한 아동들이 입장한 이후에 작품을 보고 부모님들이 당혹스러워하는 모습은 같은 관람객 입장에서도 보기 민망했다. 전시에서 아동들이 흥미를 느낄 만한 아니메 등 영상 작품들 역시 전면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로리타에 대한 성적 흥미의 니즈 표출(하츠네 미쿠 콜라보 영상, 그리고 전시에서는 제외되었지만 11월에 제작된 슈에무라와의 콜라보레이션 홍보영상을 보면 이런 의도가 더 분명히 드러난다)이라든가 카이와 키키의 전투 장면의 잔혹성 등 아동이 청취하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주제를 담고 있는 것이 많았다. 물론 다카시의 작품이 포르노 인형들 및 오타쿠들의 폭력적·성적 욕구의 재현인지, 진정한 예술의 장르인지는 논란이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런 부분까지 염두에 두고 폭넓은 이해를 할 수 있는 관람객을 대상으로 했다면 의도가 더 잘 전달됐을 것이다.



[1] 슈에무라와의 합작품은 11 초에 이루어졌으므로 전시되지 않았다.

슈에무라 유투브 주소 http://youtu.be/aoTP5Aig-wU http://youtu.be/Fcn0tj_6sbI